6월27일 밤8시경 청량리역 광장에서 그렇게 임재규(林載珪·49)씨의 IMF탈출기는 시작됐다.
임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부천과 김포 두곳에 공장을 두고 스포츠용품을 생산하는 견실한 중소업체의 사장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부도를 맞으면서 그는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마지막으로 남았던 집 한채도 빚보증을 서줬던 친구가 부도를 내면서 은행에 압류됐다.
매일 소주병에 입을 대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고 압류딱지가 붙은 집에는 한시도 머무를 수가 없어 전국을 돌아다녔다.
‘죽어버리자. 차라리 없어져버리는 게 가족들도 편하리라.’
강원도 정동진으로 자살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러나 출발직전 청량리역에서 가나안교회 사람들과 마주친 것. 그들과 합류한 뒤 새벽5시에 일어나 밤10시면 잠이 드는 규칙적인 생활 속에 술을 끊었다. 가슴 속 가득찼던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절망은 조금씩 씻겨나갔고 가족들을 대할 자신감도 다시 생겼다.
30일 그는 4개월15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나갔던 공공근로사업을 만기로 마쳤다. 통장에는 한푼도 쓰지 않고 모은 돈 3백10만원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더 심한 고통을 받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세상을바라보면앞으로살아가야 할 삶이 너무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방황하고 있을 가장들에게 전하는 말이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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