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관철동의 보신각 종은 세조 14년(1468년)에 원각사종으로 처음 주조됐다. 높이 3.647m 구경 2.228m 무게 19.66t인 이 청동제 종은 임진왜란으로 종각이 소실된 후 1619년부터 지금 이자리에 자리잡았다.
보신각 종소리는 사대문(숭례문 흥인지문 숙정문 돈의문)과 사소문(혜화문 소덕문 광희문 창의문)을 열고 닫는 신호였다. ‘파루(새벽종)’는 오전 4시에 33번, ‘인정(저녁종)’은 오후 7시에 28번을 쳐 통행을 풀고 금지했다. 파루의 횟수는 관세음보살이 중생을 악에서 구하기 위해 이 횟수만큼 육신을 쪼개는데서 비롯됐다는 설이 있다.
보신각 종이 침묵했던 때도 있었다. 일제하 36년과 6·25전쟁기간. 타종행사는 휴전된 53년 시작된 후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
보신각종은 옛 종이 아니다. 85년 시민성금으로 만들어졌다.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시대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던 탓일까. 80년 종 안쪽이 균열되고 84년엔 쇳소리가 나 바꿀 수밖에 없었다. 89년부터는 타종행사에 시민대표가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진짜로 종을 치는 사람은 보신각 ‘종지기’ 조진호(趙珍鎬·71)씨다. 선친으로부터 “‘종님’을 잘 모셔라. 네가 5대 종지기다”라는 유언에 따라 보신각 뒤편 7평짜리 관리소에서 종을 보살펴온지 36년째다. 실제 타종식에서 타종인사들은 포즈만 취할 뿐 맨 뒤에서 방향을 잡고 힘을 싣는 일은 조씨의 몫이다.
조씨는 “제야 때마다 종을 치며 많은 것을 빌어왔지만 올해는 나라살림이 하루빨리 펴지기를 소망해야겠다”고 말했다.
〈이명건기자〉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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