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풍(北風)’ ‘세풍(稅風)’ ‘총풍(銃風)’…. 숱한 바람 치다꺼리로 지샌 한 해였다.
북풍사건 한파는 정권교체를 실감케했다. 2월15일 재미교포 윤홍준(尹泓俊)씨 구속을 계기로 옛 안기부 정치공작의 실상이 드러났다. 전직 안기부장을 비롯해 옛 안기부 간부 10명이 그들이 불러일으킨 북풍 업보로 찬바람을 맞았다.
이 사건 수사과정에서 할복소동을 일으킨 권영해(權寧海)전안기부장은 1심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다.
북풍에 이어 ‘세풍(稅風)’이 불어닥쳤다. 8월31일 임채주(林采柱)전국세청장 소환을 계기로 드러난 97년 대선자금 불법모금사건으로 이회창(李會昌)한나라당총재의 동생 회성(會晟)씨가 구속되고 이총재까지 수사대상에 올랐다.
판문점 총격요청사건을 의미하는 ‘총풍’은 국기(國基)를 뒤흔든 메가톤급 태풍이었다. 특정 후보를 대통령에 당선시키기 위해 적(敵)과 ‘내통’, 판문점에서 무력시위를 일으켜 달라고 한 이 사건의 배후 수사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중국 베이징에서 대통령선거를 겨냥한 정치적 내통이 이루어지는 와중에 판문점을 지키는 남북의 병사들이 ‘아래’선에서 내통한 사실도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바람처럼 나타나 바람처럼 사라지곤 한 탈옥범 신창원(申昌源)의 탈주행각은 그야말로 신출귀몰을 방불케 했다.
종권다툼에 눈 먼 승려들이 조계종 총무원 점거를 둘러싸고 접전을 벌여 “중풍(僧風)에 불교계가 ‘중풍’이 들었다”는 말도 생겼다. 성도덕의 타락을 상징하는 ‘성풍(性風)’과 ‘색풍(色風)’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대통령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이 전세계를 흔들었고 발기부전 및 조루증 치료제 ‘비아그라’와 ‘SS크림’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PC통신에 ‘부부교환클럽’과 ‘사이버 포주’가 등장, 한심한 세기말 풍속을 연출했다.
그래도 수해주민들과 실직자 노숙자들을 돕는 ‘미풍(美風)’이 남아 있어 아직도 따스한 세상임을 말해주었다.
〈이수형·이승재기자〉so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