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향기]이문재 「저물녘에 중얼거리다」

  • 입력 1999년 1월 12일 19시 20분


우체국이 사라지면 사랑은

없어질 거야, 아마 이런 저물녘에

무관심해지다 보면, 눈물의 그 집도

무너져버릴 거야, 사람들이

그리움이라고, 저마다, 무시로

숨어드는, 텅 빈 저 푸르름의 시간

봄날, 오랫동안 잊고 있던 주소가

갑자기 떠오를 때처럼, 뻐꾸기 울음에

새파랗게 뜯기곤 하던 산들이

불켜지는 집들을 사타구니에 안는다고

중얼거린다, 봄밤

쓸쓸함도 이렇게 더워지는데

편지로, 그 주소로 내야 할 길

드물다, 아니 사라만 진다

노을빛이 우체통을 오래 문지른다

그 안의 소식들 따뜻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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