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생각하며]이상훈/어른들이 만드는 「세상」

  • 입력 1999년 1월 14일 19시 37분


어려운 시절 힘든 때일수록 고향은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는다. 도시화 기계화 획일화되어 가고 있는 세상에 내가 만드는 ‘좋은세상 만들기’(서세원 신은경 사회) 프로그램이 마음의 문을 꽉 닫고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외로움을 달래주고 웃음과 따뜻한 정을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것이 내 작은 보람인 셈이다.

고향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외롭고 쓸쓸하게 지내시면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사신다. 그런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구수한 덕담이나 재미있는 웃음이 나올 리가 없다. 그야말로 꾸미지 않은 웃음의 원천이 바로 여기 숨어 있는 것이다.

어르신들의 거리낌 없고 구수한 입담과 사랑방에서 듣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가슴속에 묻어둔 이야기. 그 이야기들이 얼어붙은 우리의 가슴을 녹여준다. 모두가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사는 이때, 아직도 저녁 식사시간에 불쑥 집으로 낯선 사람이 찾아가도 따뜻한 마음으로 밥 한 그릇 대접하는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계시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다. 이제 이 분들이 다 돌아가시고 나면 우리는 어디가서 우리의 따뜻한 고향을 찾을 수 있을까.

자식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소개하는 코너에 등장했던 어느 할아버지. 일흔이 넘도록 농사에만 매달려 당신은 평생 고생만 하시고도 가슴속에는 오직 한 가지, 도시에 나가 있는 자식들만 걱정이다. 그 연세에 직접 지은 쌀을 자식들에게 보내주면서 언제라도 힘들면 고향으로 내려 오라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그런 사연을 듣다보면 꼭 내게 하시는 말씀 같아서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가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노인을 공경한다 해서 그분들을 골방에 모셔두는 것이 공경이 아니다. 그분들도 인생을 즐길 권리가 있다. 이때까지 자식 눈치때문에 춤도 한번 제대로 춰보지 못한 할머니가 춤 한번 신나게 추고 속에 있는 말 다하고 보니 속이 후련하다고 말씀하신다. 출연하시는 모든 할머니 할아버지도 어린애들처럼 좋아서 어쩔 줄 모르신다.그리고 방송이 끝나고 너무 고맙다고 손에 꼭 쥐어주시는 1천원짜리 몇장. 사양하지만 끝까지 품속에 넣어주고 가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며 따뜻한 정을 가슴으로 느끼고 있다.

또 시골 촬영에서 할머니가 춥다고 손을 꽉 잡아줄 때도 그 갈라지고 마디 굵은 손에서 따뜻한 정을 느낀다. 특히 2박3일 촬영을 마치고 시골을 떠날때 손을 꼭 잡고 흘리시는 마을 할머니들의 눈물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외딴 시골. 누구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는 곳에서 당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는 고마움과 언제 또 다시 찾아오겠느냐는 아쉬움 외로움의 눈물이었다.

버스가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드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이 글을 마치며 그 분들께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 당신들은 우리들의 고향입니다.

당신들이 계셨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당신들의 그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이 때묻은 우리들에게, 비판만 할 줄 아는 우리들에게 그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오래오래 사세요.’

이상훈(S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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