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씨, 北아버지에 보내는 편지 동아일보에 전달

  • 입력 1999년 1월 15일 19시 26분


북한에 생존해있는 아버지로부터 친필편지를 받았던 소설가 이문열(李文烈·51). 그는 헤어져 살아왔던 세월의 절절한 아픔을 토로하고 이산가족의 만남을 간절히 희구하는 편지를 15일 북한에 있는 아버지 이원철(李元喆·84)씨와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해 달라며 동아일보사에 보내왔다.

“…아버님께서는 전혀 모르시고 계시는 딸이 하나 더 있습니다. 주옥(珠玉)이라고 아버님이 떠나신 그해 겨울 감옥에서 태어났는데 할머니께서 원래 지은 이름은 珠獄(주옥)이었습니다. 기구한 태어남처럼 죽음도 가엾어 88년 서른아홉의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2년전에 있었던 어머니의 임종 등 가족의 소식을 먼저 상세히 전했다.

이씨는 이어 “이 사회를 위해 일한 것보다 이 사회로부터 받은 사랑이 더 많아 언제나 감격하고 있다”는 표현으로 자신의 안부를 요약한 뒤 “이 백배의 지면이 있은들 어떻게 우리 현대사의 깊고 음침한 그늘을 모두 정리할 수 있겠느냐”며 말로서 다할 수 없는 이산가족의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오랫동안 아버님은 제게 한 추상이었습니다. 그 추상이 현실의 존재로 환원되는 그 순간이 어떨 것인지 지금은 아무 가늠도 서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을 기대하는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합니다. 부디 그날까지 옥체만안하십시오. 아울러 얼굴도 모르는 다섯 아우들에게도 안부 전합니다.”

그는 “당위(當爲) 이상 특별한 감동을 주지 못하던 통일이라는 말이 지금처럼 구체적인 현실로 절실하게 희구된 적이 없는 듯하다”며 “불초 문열 올림”이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이씨는 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지금부터 49년전에 서른여섯의 한 젊은 가장이 만삭의 아내와 어린 4남매, 그리고 늙은 어머니를 내버려두고 북쪽으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젊은이는 여든 다섯의 고령이 되어 자신이 떠날 때보다 훨씬 더 나이 먹은 남쪽의 아들에게 안부를 물어왔습니다. 그는 지금 함경북도 이령군 부호리에 거주하는 이원철이고 그의 아들은 바로 저입니다.”

이씨는 급작스럽게 쓴 듯한 쪽지같은 안부편지에서 아버지의 애절한 심경과 염원을 읽었으나 “선별적인 방북이 허용되리라 기대할 수도 없고 사사로운 방법을 찾을 수도 없어 직접 글로서 배려와 선처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형태의 이산이란 고통은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이땅에만 남아 있습니다. 잘못이 어느 편에 있든 천만이 넘는 이산가족이 아직까지도 슬픔과 그리움 속에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것은 양편 모두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할 일입니다.그들의 고통을 덜어주신다면 그 사는 곳이 어디이든 그들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 대통령과 정부도 기꺼이 호응하리라 믿습니다.”

이씨는 “그동안 통일이나 이산가족 문제에 나를 선뜻 내던질 수 없었지만 이제 와서 보니 새삼스레 부끄럽다”고 말을 맺었다.

이씨의 아버지 이원철씨는 최근 87년에 이어 두번째로 중국 옌지(延吉)에 사는 교포를 통해 아들 이씨 남매의 안부를 묻는 원고지 2장 분량의 친필 편지를 보내왔었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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