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에선 비수기로 치는 지난해 11월. ‘약속’을 개봉하던 날 김감독은 드디어 ‘터졌다’고 느꼈다. 조직폭력배 두목(박신양)과 여의사(전도연)의 사랑을 그린 멜로드라마 ‘약속’은 최근까지 전국에서 1백60만 관객을 웃기고 울렸다. 한국영화 80년사에서 다섯손가락안에 꼽을 만한 대흥행이다.
그러나 ‘약속’이전에 김감독은 충무로에서 외면받기 일쑤였다. 데뷔작인 ‘영웅연가’는 감독 자신이 제작비를 댔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태흥영화사에서 제작한 ‘참견은 노 사랑은 오 예’ ‘금홍아 금홍아’같은 영화들은 제작사 사장을 대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제작비를 고스란히 날렸다.
그가 관객의 반응에 구애받지 않는 ‘예술’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아니다. 좋은 작품을 만들면 관객이 봐주겠지 하는 생각에 열심히 영화를 만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청룡영화상 감독상을 받은 ‘참견은 노 사랑은 오 예’는 단지 7천여명의 관객이 봐줬을 뿐이다.
관객들은 그를 조롱했다. 천재시인 이상과 기생 금홍의 파격적 사랑을 그린 ‘금홍아 금홍아’를 개봉하던 날. 극장앞을 지나던 한 20대 여성은 같이 가던 남자에게 물었다. “이상이 누구야?”
그동안 연출한 영화 다섯편의 총관객은 15만명. ‘약속’한편의 10분의 1에도 못미친다. 지난 10여년간 배창호 장선우 등 동년배 감독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김감독은 눈칫밥 눈칫술을 얻어먹으며 지냈다. 하지만 영화를 그만두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영화계의 화려한 외면만 보고 부나방처럼 날아들었다가 ‘데뷔작이 마지막 작품’이 돼버린 많은 감독들에게 김유진감독은 말한다.
“결코 한번 승부로 포기하지 말라. 인생을 걸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에게 성공은 반드시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