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도처에 만연되어 있는 부정 부패와 패륜적인 사건, 청소년 탈선 등의 참담한 수렁에서 헤매고 있다. 90년대 이후에 풍미했던 일부 대중음악은 광란에 가까운 굉음과 몸부림으로 감정이 예민한 사춘기 청소년들의 정서를 자극하는 요인을 제공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성난 듯한 외침과 투덜거리는 듯한 노래, 곡예와 같은 현란한 몸동작을 수반한 랩은 수백년 동안 미국의 노예생활에서 벗어난 흑인들이 백인에 대한 한풀이 절규를 표현하는 멜로디로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유럽음악의 틀을 깬 이 음악은 약박(업비트·upbeat)을 바탕으로 즉흥적 연주를 구사하는 재즈에서 파생된 가장 파괴적인 발상의 산물이 아닐까. 제2차세계대전 후의 리듬 앤 블루스, 한국전쟁의 산물인 로큰롤, 60년대의 트위스트, 월남전의 산물인 디스코 등은 전쟁으로 지친 미국 국민에게 스트레스와 불만을 해소시켜주었지만 충동적 음악에 도취된 청소년들에게 비판력을 상실케 했음을 유념해야 한다.
우리는 조선시대 반상(班常)의 계급적 갈등을 판소리로 달랬고 일제 치하의 억울함을 한 맺힌 가요로 풀었으며 6·25이후 민주화 과정에서는 주로 미국 대중문화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 그 결과 미국 문화라면 여과없이 수용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더구나 일본의 대중문화가 수입된다니 어떻게 여과해낼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우리 방송은 어떤가. 일부 프로그램은 청소년들의 도덕적 불감증을 부추기고 있다.
따라서 국민 총화와 실추된 도덕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충동적이고 즉흥성이 넘치는 음악보다 정악‘수제천’과 같이 장엄하고 정서가 넘치는 은은한 선율의 우리 음악을 청소년에게 많이 들려주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황병근(우리문화진흥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