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불구속기소 안팎]「방탄국회」에 손든 검찰

  • 입력 1999년 1월 29일 19시 25분


정치권의 ‘뚝심’에 검찰이 마침내 두손을 들고 말았다.

29일 국회에 체포동의요구안이 제출된 국회의원 9명을 불구속기소하겠다고 밝힌 검찰에 정치권과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예전의 기세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검찰은 정치권 비리와의 성역없는 전쟁을 선포한 상태였다.

검찰은 정치권에서 ‘국회의원 불구속 기소설’이 흘러나오자 이에 쐐기를 박으려는 듯 지난달 22일 한나라당의 김윤환(金潤煥) 황낙주(黃珞周) 조익현(曺益鉉·전국구)의원에 대해 한꺼번에 구속영장을 청구했었다. 하지만 검찰은 잇단 ‘방탄 국회’로 회기중 불체포특권을 지닌 국회의원을 구속하는 것이 힘들어지자 ‘명분쌓기’에 나섰다.

김태정(金泰政)검찰총장은 22일 박상천(朴相千)법무부장관에게 건의해 박장관 명의로 박준규(朴浚圭)국회의장에게 체포동의 요구안의 조속처리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박의장은 처리 의사가 없다는 회신을 보내왔다.

이에 김총장은 26일 “국회가 체포동의요구안을 처리하지 않겠다고 하면 불구속 기소할 수 밖에 없지만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이 무슨 ‘뇌물 면허장’이냐”며 정치권을 맹비난했다.

결과적으로 검찰은 수시로 국회를 열어 비리 정치인을 보호해 온 정치권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면서 이들을 불구속 기소함으로써 ‘뜨거운 감자’를 법원으로 넘기고 만 셈이다.

검찰은 이들을 불구속 기소하면서 “곧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김윤환의원을 불구속 기소하기로 결정하고 형평성 차원에서 나머지 의원들도 불구속 기소한다”고 밝혔다.

이같은 논리는 향후 검찰권 행사의 ‘짐’이 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적발되는 비리 정치인이 ‘전례’를 거론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 법원이 국회의원을 법정구속하려 해도 정치권이 ‘방탄국회’로 대응한다면 실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이 거리를 활보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원죄’는 정치권에 있지만 현실을 앞세워 ‘우회로’를 택한 검찰도 일정부분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됐다.

〈하준우기자〉ha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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