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살려면 누구누구 쳐라』이종기리스트說 파다

  • 입력 1999년 1월 29일 19시 39분


97년 金총장과 沈고검장
97년 金총장과 沈고검장
심재륜(沈在淪) 대구고검장의 ‘항명파동’은 이종기(李宗基) 변호사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이변호사의 ‘미운놈 찍기식’의 진술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는 설이 나돌아 검찰이 고심하고 있다.

이변호사의 수임알선리스트와는 별개로 이변호사의 ‘입’에서 나온 소위 ‘이종기리스트’라는 ‘살생부’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이변호사의 진술로 사표를 낸 검사들이나 진퇴가 거론되고 있는 검사 대부분이 ‘세계관’과 ‘스타일’ ‘출신지역’ 등 여러 방면에서 이변호사와는 판이한 사람들이어서 뒷말을 낳고 있다.

심고검장이 폭탄선언을 하면서 “머리 좋은 이종기에게 머리 나쁜 검찰이 당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도 이를 두고 한 주장인 듯하다.

검찰수사가 이처럼 이변호사에 의해 끌려가게 된 이유는 검찰이 수사초기부터 너무 무리하게 수사를 진행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

검찰 수뇌부는 수사초기 법조비리에 대한 엄청난 비난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철저하고도 투명한 수사’를 천명했었다. 이변호사의 예금계좌에 대해 추적에 나서고 대검 중수부 수사팀을 파견하기도 했다.

그러나 몇몇 검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검사들은 ‘떡값’이나 전별금으로 받은 돈을 예금통장에 넣지 않아 수사에 진척이 없었다.

이때 이변호사가 “이왕 이렇게 된 이상 모든 것을 밝히겠다. 그러나 검찰이 살기 위해선 , ×××는 쳐야 한다”며 몇명의 이름을 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변호사는 “이런 사람을 제거하지 않으면 수사에 협조할 수 없다. 이들을 제거해 준다면 대질에도 응하겠다”며 나름대로 ‘빅딜’을 시도했다는 것이 이종기리스트 설의 내용이다.

국민을 납득시킬 만한 수사결과가 필요했던 검찰 수뇌부로선 그의 제안을 받아줄 수밖에 없었으며 이때 나온 이름이 심고검장과 대전고검 간부를 지낸 모검사장 및 지검간부를 지낸 모검사장 등이라는 것.

한 수사관계자는 “심고검장을 찍어서 물어본 적은 없다”며 “단지 대전지검장을 지낸 여러 검사장의 명단을 제시했더니 이들의 비리를 찍어서 이야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심고검장의 비리혐의를 둘러싸고 이사건 수사본부장인 이원성(李源性)대검차장과 심고검장이 상반된 주장을 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심고검장의 ‘비리혐의’는 △그가 대전지검장 시절 이변호사로부터 10여차례에 걸쳐 술접대를 받았고 △광주지검장으로 떠날 때 전별금 1백만원을 받았다는 것이 주요 내용.

검찰은 이변호사와 당시 대전지검장 운전사의 진술로 이같은 ‘혐의’가 ‘사실’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고독한 천재형’으로 검찰의 ‘폭탄주’ 문화에 대해 증오감까지 갖고 있는 이변호사가 보스기질에 폭탄주 애호가인 심고검장을 못마땅하게 생각해왔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보내버려야 한다는 생각에서 ‘찍어서’ 진술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심고검장은 “우연히 술자리에서 이변호사와 마주친 적은 있지만 술접대와 전별금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변호사는 다른 검사장들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이유를 대며 ‘척결돼야 할 인물’로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검사장은 대전지검을 방문하는 후배들에게 선물을 사준다는 명목으로 2백만원을 달라고 했으며 다른 한 검사장은 후배 부장검사의 사건을 소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검사장은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한 검사장은 28일 이변호사와 대질신문까지 벌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울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비리가 드러난 검사들을 처벌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리스트에 오른 검사들 대부분이 특정지역 출신이거나 이변호사와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들이어서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수뇌부는 이에 대해 “형평성 문제는 있지만 이미 드러난 비리를 덮을 수는 없다”며 강공방침을 재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이종기리스트 자체가 그의 ‘미운 놈 찍기’식 자의로 이루어진 것인지 아니면 이 사건을 둘러싸고 오르내리는 차기 검찰총장 후보들간의 파워게임에서 빚어진 이른바 빅딜의 산물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또한 심고검장 외에 사표를 종용받은 검사들과 일반검사들이 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검찰수사가 원점으로 다시 돌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이수형·조원표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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