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들은 “대법원의 진상조사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아직은 두고봐야 하는 것 아니냐”며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려 했지만 지난해 ‘의정부 사태’에 이어 이번에는 고법부장판사 등 고위직이 연루됐다는 사실에 매우 당혹스러워 했다.
특히 ‘이종기리스트’에 거명된 판사수가 검사들에 비해 적다는 것에서 위안을 찾았고 ‘심재륜파동’으로 검찰전체가 심각한 내홍(內訌)을 겪을때 침묵으로 일관했던 법원도 ‘태풍의 눈’에 든 것을 비로소 실감하는 눈치다.
서울지법의 한 단독판사는 “언론에 알려진대로 판사들이 계좌추적결과 거액의 전별금 등을 받았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법원행정처는 이들의 사표를 수리하는 등 응분의 조치를 취해야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단독판사는 “대법원장 등 수뇌부는 수사결과 발표를 미루지 말고 솔직하게 사건의 진상을 밝힌 뒤 국민에게 겸허하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부장판사는 “비리사실이 밝혀진 판사들의 권위가 무너진 것도 서글픈 일이지만 판사사회전체가 국민의 신망과 존경을 잃게될 것 같아 더욱 안타깝다”고 털어 놓았다.
이 사건이 터진 후 언론의 보도에 불만을 갖고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진행을 검토해 왔던 서울지법의 배석판사들은 “고법부장판사급 등 고위직들이 비리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난 이상 언론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도 다 물건너간 것 아니냐”며 허탈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또 다른 배석판사는 “법원행정처 간부들이 연루됐다는 사실때문에 그동안 언론보도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것 아니냐”며 대법원장을 비롯한 수뇌부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검찰은 이날 수사발표에서 판사 5명의 비위 사실을 공개하지는 않았으나 대부분 명절 떡값으로 50만∼2백만원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행정처는 자체진상조사를 거쳐 이달 중순경 징계위원회를 열어 비리연루 판사들에 대한 징계여부를 결정키로 했다.
〈하태원기자〉scooo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