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박지원/금강산에 다녀와서

  • 입력 1999년 2월 2일 19시 28분


50년 민족분단의 슬픔도, 김대중대통령이 일관되게 추진하는 햇볕정책의 성과도, 동족의 따뜻한 사랑도, 통일의 희망과 가능성도, 모두 천하절경의 금강산에 있었다.대통령을 가깝게 보좌하는 청와대 공보수석, 정부의 최고위급 인사가 금강산에 간다는 언론의 보도로 많은 분들이 깊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나는 솔직히 나의 금강산 방문이 상징성으로 비치는 모습에 부담을 느꼈다. 그러나 나의 방문으로 인해 금강산 관광이 좀더 안전하고, 누구도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일게 하고, 보다 적극적인 햇볕정책의 홍보가 될 수 있다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강산 관광길에는 분단의 슬픔이 엄존했다. 동해항을 출발하면서 출국신고서를 작성할 때 나는 다시 한번 분단의 비애를 느껴야했다.

선상에서 만난 승객들은 청와대 대변인과 함께 가니 안전하다고 인사를 해왔다. 물론 나는 출발에 앞서 현대의 고위간부로부터 금강산독점개발권 계약서와 월말까지 2천5백만달러 송금 문제가 조정중이라는 내용을 전해듣고 승선했다. 그러나 잘될 것이라는 희망은 공해상에서 어긋났다. 북측은 송금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우리를 공해상에 머물게 했다. 동승한 현대 간부들은 외국은행이 토 일요일에 휴무하므로 각서를 북한당국에 전달하고 무사히 장전항에 입항할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11시간 늦게 장전항에 들어갈 수 있었다.

전화위복인가, 내가 승선했으니 북한 당국에서 특별 배려를 했다고 할수 있을까. 우리는 새벽과 밤중에만 입항이 허락되던 선례를 깨고 1월30일 오후 3시 장전항에 입항했다. 장전항은 북한의 중요한 군항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일부 군사시설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졌을 것으로 짐작했지만 북한의 많은 군함들이 관광선 옆에 정박해있었고 군사시설은 물론 주민들이 살고 있는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게다가 북한의 입국관리나 세관원은 나에게 의연하면서도 이례적인 관심을 표명했다.

모든 북한의 관리들은 비교적 어디에서나 친절했다. 또한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주민들은 우리 일행을 만나면 손을 열심히 흔들어 주기도 했다.

현대 관계자들에 따르면 북측은 나에게 많은 배려를 했다. 저녁 6시가 넘어 온정리관광을 허용한 것이라든가 31일 하루에 두 개의 코스를 관광케하고 북한 식당에서 식사제공을 한 것도 그들로서는 큰 배려라는 설명이었다. 그러면서도 평소보다 많은 군인들이 곳곳에 보초를 서고 있는 것도 이례적인 일이라는 설명이었다.짧은 순간의 관찰이었지만 북한은 변하고 있었다. 현대 관계자들의 증언을 빌리면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지난 3개월 사이에 엄청난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예로 현대 직원들이 금강산 호텔에 유숙하며 준비하는 동안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사람이 찾아와 호텔식사비는 10달러이지만 자기들이 8달러에 더 맛있게 서비스하겠다고 세일즈를 하러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자리를 옮겨 음식을 사 먹었더니 값도 싸고 맛도 더 좋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시장경제가, 자본주의 경쟁이 북한땅에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김대중대통령은 늘 북한에 대해 안심하고 믿고 상대할 처지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쟁으로 몰아가서도 안된다고 강조한다. 또한 누구도 북한에 대해 자신있게 판단할 사람은 없지만, 북한에 상존하는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을 판단해서 긍정적인 면을 살려간다면 북한에 대한 우리의 영향력은 커지며 북한에서 우리 남한을 보다 더 많이 알게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나는 지금은 식당에서 열심히 서비스를 해주던 북한의 순진하고 아름다운 복무원(종업원)처녀의 따뜻함이, 관광 증명서에 통관도장을 찍으면서 다시 오라고 말하던 북측관리의 따뜻한 미소를 잊을 수 없다.

우리의 슬픔과 동족의 열정을 금강산에주고 왔다.그러나우리는 꼭 하나가될것이라는희망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박지원<청와대 공보수석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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