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전국 평검사회의 주재 이원성 대검차장

  • 입력 1999년 2월 4일 19시 28분


‘집단행동’ 일보직전까지 갔던 평검사들이 검찰수뇌부와의 난상토론을 벌인 뒤 갑자기 ‘총장중심의 단결’이라는 결론을 내린데 대해 해석이 분분하다.

검찰수뇌부의 신속한 대처가 주효했다는 평가도 있고 전국평검사회의라는 사상 유례없는 대처방식이 훌륭했다는 분석도 있다. 어느 경우든 젊은 후배검사들을 상대로 ‘조직’이라는 대의(大義)를 설득한 대검찰청 이원성(李源性)차장검사의 ‘고독한 승부수’는 평가를 해주는 분위기다.

이차장이 서울 부산 인천지검 일선검사들이 연판장을 돌리는 등 집단행동 조짐을 보인다는 보고를 받은 것은 대전법조비리 수사결과가 발표된 1일 오후.

이차장은 바로 정공법을 택했다. 연판장을 주도했던 일선검사들을 대검에 모아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내용이었다. 3일 예정된 전국차장검사회의를 2일로 앞당기고 회의 이름도 전국차장 및 평검사회의로 바꾸도록 했다.

한 대검간부는 “‘문제검사’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가 한 목소리로 수뇌부 퇴진을 요구하는 등 분위기가 험악해지면 수습이 불가능하다는 논리로 많은 간부들이 말렸으나 이차장이 정면돌파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차장은 ‘수뇌부 용퇴’ ‘정치적 중립’ 등 민감한 주장이 나올 때마다 솔직하게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529호실 사태에 대한 검찰의 잘못이 제기될 때는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 측면이 있다”며 솔직하게 시인했다.

서울지검 한 검사는 “이차장과의 토론결과가 전적으로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지만 검찰의 2인자가 ‘울분에 찬’ 평검사 59명을 상대로 11시간동안 자리를 지키며 난상토론을 벌인 것은 평가해 줄만 하다”고 말했다.

〈조원표기자〉cw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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