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신낙균(申樂均)문화부장관이 한자 병용 방안을 보고하는 국무회의 자리에서도 1차 논란이 있었다.
신장관의 보고가 끝나자 김기재(金杞載) 행정자치부장관은 “기본 원칙에는 찬성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말 풀어쓰기의 노력이 진전을 보여왔고 한자 교육의 공백이 있었다”며 “당장 공문서에 한자를 병용하기 보다는 이 문제를 2단계로 미뤘으면 좋겠다”고 신중론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최재욱(崔在旭)환경부장관은 “문화부가 현실을 감안해 한자 병용 방안을 만든 것은 큰 진전”이라고 찬성의 뜻을 밝힌 뒤 “정부내 보고서 등에서 이미 한자 혼용이 이뤄지고 있는 이상 한자 혼용의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장관은 또 “한자 교육을 전혀 실시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며 “입시에 한자 문제를 한 문항이라도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무위원들간의 찬반 양론이 팽팽히 맞서자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한자병용은 필요하지만 혼용 문제는 시간을 두고 전문가의 연구와 토론을 거쳐 추진해야 한다”고 중재했다.
국무회의에 앞서 8일 열린 국어심의회에서도 찬반 양론이 팽팽히 맞서 결정을 뒤로 미루었는데 문화부가 9일 전격적으로 발표한 데서도 신중하지 못한 결정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번 결정에 대해 한자교육 강화를 역설해온 사람들은 찬성의 뜻을 표하고 있지만 반발 또한 만만치 않다. 한글 전용을 주장해온 한글학회(회장 허웅)는 “정보화라는 시대 조류에 역행하는 조치”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허회장은 “한글이 한자에 대해 절대 우세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새삼스레 한자 병용을 추구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비판했다.
또한 문화부가 사전에 전문가들의 의견 수렴이나 관련 부처와의 조정 없이 어문정책을 발표함으로써 졸속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행정자치부는“공문서에한자를병행표기할경우 비능률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건설교통부 역시 “도로 표지판에 한자를 병기할 경우 운전자의 시야를 어지럽게 해 안전 운전을 방해할 수 있고 동시에 표지판을 바꾸는 데 드는 비용 문제도 만만치 않다”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