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영회장 사건]재벌「가짜 수출」은행「눈먼 대출」

  • 입력 1999년 2월 11일 19시 26분


가짜 수출입서류로 은행에 수천억원을 대출해달라고 요청한 기업가. 수출 실적은 확인도 하지 않고 수천억원을 대출해준 은행. 그리고 가짜 수출이 탄로나자 계열사 돈을 불법으로 빼내 갚게해 계열사마저 멍들게 만든 재벌총수….

신동아그룹 최순영(崔淳永)회장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최회장 사건은 가짜 무역과 허술한 금융, 재벌기업의 상호지급보증 등 우리나라 경제의 고질적인 병폐가 얽히고 설켜 있다”고 말했다. 수사에 참여했던 검사는 “이 사건을 통해 왜 우리가 국제통화기금(IMF)구제금융을 받게 됐는지, 금융기관이 어떻게 수조원의 부실채권을 지게 됐는지, 그리고 재벌기업이 왜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는지를 알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신동아그룹 계열 무역회사인 ㈜신아원은 96년 5월부터 ‘스티브영’사(社)와 무역거래를 시작했다. 스티브영은 최회장의 영문 이름으로 이 회사는 그가 바하마에 세운 회사.

신아원은 스티브영에서 물건을 수입해 다시 독립국가연합의 사하공화국으로 수출하는 것처럼 가짜 선하증권을 만들어 조흥 제일 경기 평화은행 등 4개 은행에 제시했다. 은행은 서류만 보고 97년 6월까지 연리 6%의 낮은 이자로 1억8천5백여만달러의 수출지원금을 대출해줬다.

검찰은 “은행들은 신아원의 수출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살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만일 은행들이 단 한번만이라도 수출물건이 제대로 실리는지 확인했으면 사기대출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은행들이 실사(實査)없이 수출서류만 보고 대출해주는 관행 때문에 수출금융이 악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피앤텍 사건에서도 이런 대출 맹점은 드러났었다. 서울 산업 조흥은행은 피앤텍이 싼값의 반도체 칩을 빌렸다 되돌려 주면서 정상적인 무역거래인 것처럼 속여 수출지원금을 신청하자 실사를 제대로 하지도 않고 38차례에 걸쳐 1천15억원을 대출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사태는 신동아그룹 전체 계열사의 부실로 이어졌다. 최회장은 검찰 수사가 진행되자 자신이 지급보증한 신아원과 피앤텍의 대출금을 갚기 위해 그룹 계열사의 돈 3천억원을 불법으로 빼냈다. 이 때문에 대한생명 등 신동아그룹 계열사들은 심한 자금난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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