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결수 사복착용]「유죄확정前 무죄」원칙 지켜

  • 입력 1999년 2월 18일 19시 31분


미국 미식축구 스타 O J 심슨은 96년 전처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그는 재판을 받는 동안 단 한번도 죄수복을 입지 않았다.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모든 피고인이 심슨처럼 사복을 입고 재판을 받는다. ‘유죄가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는 헌법상의 대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다.

우리 헌법 제27조 2항도 무죄추정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형사피고인은 복장에 관한 한 구속되는 즉시 유죄로 추정된다. 구치소에 수감되자마자 수의로 갈아입고 수의를 입은 상태에서 재판에 나온다. 심지어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할 때도 하얀 수의를 입고 왼쪽 가슴에 번호표를 달고 나와 전국민 앞에서 ‘유죄추정’을 받는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같은 기본권 침해가 뚜렷한 법적 근거없이 행해져 왔다는 점이다.

재소자 수의착용의 유일한 법적 근거는 행형법이다. 이 법 제20조는 ‘수용자에게는 일정한 의류와 침구를 지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의류와 침구의 급여에 관한 구체적 내용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에 근거해 제정된 행형법 시행령은 ‘수용자의 의류와 침구는 수용자의 건강유지에 적합한 것이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어디에도 ‘반드시 수의를 입혀야 한다’는 규정이 없는 것이다.

법조인들은 수의착용에 관한 법령의 규정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강제규정이 아니라 훈시규정으로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미결수에 대한 일률적인 수의착용은 그 자체가 불법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법무부도 미결수의 사복착용은 별도의 법개정이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다만 ‘수용자의 의류 및 침구급여에 관한 법무부 규칙’을 바꾸면 된다는 것.

문제는 예산과 시설. 사복착용을 허용할 경우 교도소내에 옷장과 탈의실 등을 설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전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넥타이 등으로 자해를 하는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법무부는 이같은 점을 고려해 실시범위와 시기를 조절하기로 했다. 구치소 또는 교도소 밖으로 나갈 때만 사복을 입도록 하고 교도소 안에서는 계속 수의를 입도록 할 방침이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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