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전향장기수 북송협상說]남북관계 새돌파구 주목

  • 입력 1999년 2월 22일 19시 59분


법무부가 22일 미전향 장기수 17명에 대한 특별사면 계획을 발표하며 이들에 대해 북송 등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언급해 이 문제가 남북관계 국면 돌파의 계기가 될 것인지 주목된다.

특히 법무부 당국자는 이미 통일부 쪽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북한측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밝혀 정부가 남북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대북 비료지원과 함께 미전향 장기수 북송문제를 카드로 활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그러나 주무 부처인 통일부는 미전향 장기수의 북송문제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신언상(申彦祥)대변인은 “법무부에서 이 문제가 어떻게 제기됐는지 알지 못하나 통일부로선 전혀 검토한 바 없다”고 공식으로 부인했다.

그는 남북협상문제에 대해서도 “통일부가 북송문제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협상이 진행중일 수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사실 정부로서는 현 단계에서 미전향 장기수들을 북한에 보내는데 여러가지 현실적인 제약을 안고 있다. 무엇보다 김영삼(金泳三)정부시절인 93년3월 이인모(李仁模)노인을 아무 조건없이 전격적으로 북송한 직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의 탈퇴를 선언하는 바람에 남북관계가 오히려 악화됐던 전례가 큰 부담이 되고 있다.

한 당국자는 “미전향 장기수들을 북한에 보내려면 북한이 먼저 당국간 대화를 통해 이산가족문제나 납북자 또는 국군포로 송환 문제 등에 호응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여론의 반대에 부닥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된다면 정부로서는 굳이 이들을 계속 붙들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부가 비공개적으로는 이들의 북송문제를 검토 내지 추진해 왔을 개연성은 있다. 정부 당국자들은 수십년을 감옥에 있으면서도 끝내 사상전향을 거부한 이들을 계속 잡고 있어봐야 국제적으로 인권 논란만 계속될 뿐 별다른 실익이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통일부가 이들의 특별사면을 놓고 그 동안 법무부 국가정보원 등 유관기관과 계속 협의를 해온 것도 박상천(朴相千)법무부장관의 발언 등이 근거 없는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대목이다.

문제는 과연 북한이 우리의 대북지원과 미전향 장기수 송환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인지의 여부다. 이번에 특별사면되는 미전향 장기수들은 준법서약서도 제출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북한으로부터 상호주의에 입각한 반대급부를 약속받지 않고 이들을 북송할 경우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논란이 생길 소지가 있다.

그러나 정부가 어떻게든 올해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겠다는 방침에 따라 북한을 회담 테이블로 유도하기 위한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는 만큼 미전향장기수 북송문제가 그같은 방안의 하나로 논의되는 것은 수긍이 가는 측면이 있다. 다만 정부의 이런 움직임이 공개된 것에 대해 북한이 거부반응을 보일 경우 설사 북송문제가 추진돼 왔다고 하더라도 중단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아직은 전망을 속단하기는 힘들다.

〈한기흥기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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