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3일 북한이 적십자 채널을 통해 미전향 장기수와 출소 공안사범들의 송환을 요구해온 것과 관련해 관계부처 협의를 갖고 이를 논의하기 위한 적십자대화를 곧 북한에 제의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부는 이들의 무조건 북송은 어렵다고 판단하고 북한에 대해 상응하는 조치로 이산가족교류나 국군포로 납북자의 송환문제 등에 성의를 보일 것을 요구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적십자회담이 열릴 경우 미전향 장기수 송환문제와 함께 파종기 전 대북비료지원 등 현안이 함께 논의될 가능성이 높아 남북관계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북한 적십자회의 장재언위원장은 이날 오전10시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통해 정원식(鄭元植)대한적십자사총재 앞으로 서신을 보내고 석방예정인 미전향장기수 전원과 이미 출소한 김인서 김영태 함세환씨 등 노인 3명을 처자식들이 살고 있는 북으로 송환해 줄 것을 요구했다.
북한은 서한에서 “비전향장기수들이 감옥에서 풀려나온다고 해도 남조선에는 그들을 곁에서 간호해주고 보살펴 줄 일점혈육이 없다”며 “이 문제를 옳게 해결하는 길은 오직 본인과 그 가족들, 내외 여론의 요구대로 그들을 아무런 조건없이 가족들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데 있다”고 밝혔다.
북한은 또 “우리는 귀측이 비전향장기수들을 모두 무죄석방함과 동시에 가족들의 품으로 돌려보낸다면 얼어붙은 북남관계를 풀고 폭넓은 대화와 접촉의 문을 열어나가는 데서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인정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미전향장기수(북한은 비전향장기수로 표현)와 함께 송환을 요구한 김인서씨 등 노인 3명은 한국전쟁 때 남파됐거나 인민군 등으로 참전해 빨치산 활동을 하다 검거돼 수형생활을 하면서도 사상전환을 거부하다 70년대와 80년대에 만기출소한 공산주의자들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미전향장기수의 북송문제는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과 함께 본인들의 의사, 국민여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쉽게 처리할 사안이 아니다”며 “일단 대화를 통해 북한측의 진의를 타진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기흥기자〉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