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포로-납북자 얼마나?]생존 국군포로 136명 추정

  • 입력 1999년 2월 24일 07시 31분


6·25전쟁 당시 북한군과 중공군에게 끌려갔으나 지금까지 살아 있는 국군포로가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정부가 추정하는 생존 국군포로는 1백36명. 지난해 11월23일 안병길(安秉吉)국방부차관이 국회 국방위에서 ‘국군포로 송환대책 관련업무’를 보고하면서 처음으로 밝힌 공식 수치다.

이는 북한에 억류됐다가 97년 12월 45년만에 귀환한 국군포로 양순용(梁珣瑢·73)장무환(張茂煥·73)씨와 탈북 귀순자 등 16명의 증언을 종합해서 정부가 작성한 것.

양씨는 관계기관 조사와 언론과의 접촉을 통해 북한에 남아있는 국군포로 1백명 이상의 명단 및 출신지역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장씨도 70여명의 포로명단(사망 40여명 포함)을 진술했다. 그러나 1백36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귀환 국군포로를 조사하면서 이름을 알아낸 ‘추정치’에 불과하므로 실제 생존 포로는 이보다 많을 가능성이 있다. 양씨는 북한 강동포로수용소의 경우 휴전 직후 국군포로 6백여명이 수용됐으나 자신이 귀환하기 전까지 10%가량인 59명만이 살아 있었다고 증언했다.

국방부가 96년 7월 ‘국군포로 실종자 대책위원회’를 만들면서 파악한 국군피해는 사망 2만2천5백62명, 실종 1만9천4백9명.

실종된 국군에다 민간인 참전자 5천86명, 또 민원신고가 들어온 2백64명을 합치면 모두 2만4천7백59명이 전쟁중 실종된 셈이고 중복되는 이름을 제외하면 2만4천2백15명에 이른다.

양씨의 주장대로 국군포로의 생존비율을 10%로 보면 최소한 2천명 이상이 아직도 북한에 살아있다는 얘기가 된다.

양씨와 장씨는 물론 94년 10월 국군포로중 처음으로 귀환한 조창호(趙昌浩·69)씨도 모두 전사자로 처리돼 국립현충원에 위패가 봉안된 상태였다. 따라서 생존포로는 정부 추정치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전쟁 당시 한국군 6만5천명이 생포됐지만 휴전협상 과정에서 7천1백42명이라고 말했다가 실제 포로교환때는 8천3백33명(유엔군 포함 1만3천4백57명)을 넘겼다.

한편 55년 이후 강제 납북자 중 96년까지 미송환된 사람은 모두 4백42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중 동진호 선원 12명 등 어부가 4백7명으로 가장 많고 해군 함정 승조원 20명, 대한항공 피랍자 12명 등이 포함돼 있다.

북한은 55년 이후 3천7백38명을 납치하고 이중 96년까지 3천2백96명만을 송환했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의 국군포로생존자들은 대부분 70대의 고령으로 강제노동에 동원되는 등 최하층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당국은 이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등의 실상을 전혀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가 국군포로 출신으로 94년 북한을 탈출한 조창호씨를 통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국군포로 양순용씨는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좋은 직업은 가질 수가 없었고 평생 굴안에 들어가 막노동을 하다 병들어 죽곤 했다”고 증언했다.

〈송상근·선대인기자〉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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