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작년에 국립국악원 등 국립예술기관의 민영화 얘기가 나오면서부터 나의 우울증은 시작되었는데 오늘은 그것이 극에 이르렀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대한 나의 기대와 애정이 각별하기 때문이다. 작년 11월 이 학교 연극원에서 탈춤 및 마당과 판에 있어서의 독특한 시간 공간 시각관에 대해 특강을 한 적이 있고 또 20일에는 전통예술원에서 대중복제예술에서의 ‘아우라(靈性)’의 가능성과 관련하여 역(易)과 영화의 관계 등에 대해 특강을 할 예정이다. 나는 왜 이같은 탈근대적인 예술문제와 전통문화의 관계에 대해 이 학교에서 두번씩이나 특강을 하며 또 왜 이 학교의 민영화에 극도로 우울해하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 한국예술종합학교는 민영화할 것이 아니라 국립예술교육기관으로서 그 위상을 확립시켜야 하며 오히려 과학기술부의 과학기술대학과 동일한 기능이 보장되도록 특별법을 제정 시행해야 한다. 왜 그런가?
21세기는 정치경제가 아니라 문화예술의 시대이며 사회구성체의 성격은 정치경제 중심에서 문화경제 중심으로, 자본 역시 산업자본이나 화폐자본에서 문화자본으로 그 개념이 바뀌고 있음은 이제 상식이다. 그러나 이때 중요한 것은 문화가 경제라는 낡은 패러다임에 환원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창조적 아이디어와 상상력, 문화적 전통의 다양성과 꿈이라는 질적 차원이 경제적 부가가치를 좌우하는 새 척도가 된다는 점이다. 21세기는 정보화가 아니라 그 콘텐츠인 창조화의 세기라든가, 컴퓨터에서 컨셉터 즉 창조적 발상지원시스템으로 중심이 이동하는 시대라는 말도 같은 뜻이다.따라서 문화산업적 마인드나 문화정책적 효율성이라는 것도 오히려 경제나 정책을 문화의 ‘창조성’에 적합하게 재조직하려는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하게 된다. 나는 이 현상에서 보다 영적 깊이가 있는 창조력이 현존 자본주의 시장을 언젠가 성스러운 인간과 생명의 시장으로 바꾸리라는 기대까지 하고 있다. 이때 결정적인 역할이 바로 국가 또는 세계국가의 창조적 개입일 것이다.
좌우간 21세기 문화시장에서 핵심이 되는 창조력을 확보하려면 현단계 민간유통의 경제지표나 효율성에 좌우될 것이 아니라 보다 깊이 있는 창조력을 산출할 고급 문화인력을 장기적으로 교육하는 국가정책 및 국가기관이 필요한 것이다. 이미 유럽 미국 일본 등은 창조적 상상력을 국가 발전전략의 중핵으로 간주하고 21세기를 대비한 국립예술기관을 속속 설립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우선 민족예술전통의 창조적 재해석과 서양문화의 탁월한 결합, 순수 고급문화 인력 양성에 의한 대중문화산업의 질높은 생산 보장, 각 예술 장르간의 복합적 교류에 의한 새롭고 우수한 예술교육 창조, 그리고 세련된 과학기술체계와 문화예술의 오묘한 경지를 씨줄과 날줄로 하는 새로운 ‘창조성’, 새로운 ‘미학적 생산성’의 창출이라는 막중한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김지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