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정부는 북한 공관원들의 홍씨 일가 납치사건을 ‘명백한 주권 침해행위’라고 규정했다. 대북(對北)조치 강도도 사과요구에서 ‘공관원 체포 및 조사→외교관 신분박탈 검토→외교관계 격하’등으로 점차 높여가고 있다. 태국 정부의 이같은 반응은 홍씨 일가의 납치 탈출경위를 보면 무리도 아니다.
지난달 19일 잠적한 홍씨 일가는 18일이나 지난 뒤인 3월9일 두대의 승용차에 실려 라오스 방향으로 끌려가던 길에 방콕 동북부 고속도로 상에서 부부만 극적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홍씨와 부인 표영희씨(55)는 승용차가 전복되는 바람에 탈출에 성공했고 아들 원명씨(20)를 태운 승용차는 태국경찰의 국경봉쇄조치로 라오스 국경을 넘지 못했다. 원명씨는 현재 북한대사관에 억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이 발생하자 태국 정부는 자국영토 내에서 벌어진 납치극에 발칵 뒤집혔다. 태국의 수린 핏수완 외무장관은 즉각 △사과 △재발방지 약속 △원명씨의 신병인도를 북한에 요구했다.
또 추안 리크파이 총리의 지시로 합동대책반이 구성돼 수사에 착수했다. 태국 경찰은 납치사건에 관여한 북한인을 모두 12명으로 파악하고 이중 북한대사관 안전책임자인 김기문과 홍공동 용석근 김경철 등 4명에 대해서는 체포영장까지 발부했다.
태국 정부는 요구조치들이 이행되지 않을 경우 북한공관원들을 ‘기피인물’(Persona Non Grata)로 규정해 추방하고 최악의 경우 외교단절이라는 초강경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북한의 정확한 반응은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북한측은 태국 정부의 강경대응에 당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북한측은 이번 사건에 관여한 대사관 직원 12명의 명단을 태국측에 통보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는 후문이다.
한국 정부는 이번 사건이 1차적으로는 북한과 태국간의 문제라는 점에서 ‘드러나지 않는’ 외교에 주력하고 있다. 다만 ‘홍씨의 자유의사 존중’을 명분으로 홍씨의 망명을 측면 지원하고 있는 상황.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도 이미 홍씨에 대해 난민 지위를 인정해 홍씨의 망명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망명의사를 밝힌직후 서울행을 희망한 홍씨의 최종 행선지가 어디가 될지도 관심사다. 북한측이 홍씨의 한국행을 거부하며 원명씨의 신병인도를 거부할 경우 협상과정에서 홍씨의 망명지가 미국 등 제삼국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홍순경 참사관은 누구?
홍순경씨는 태국주재 북한대사관에서 무역참사관으로 8년 가량 근무하면서 쌀 수입 업무 등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학기술참사관으로 보직이 바뀐 것은 최근이라는 것. 북한측이 홍씨가 쌀 대금을 횡령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도 그의 전력과 관계가 있다. 홍씨의 장남은 북한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함께 납치됐으나 아직 소재를 알 수 없는 원명씨는 홍씨의 차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