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상공에 비바람이 몰아쳐 시계가 좋지 않지만 착륙을 시도하겠습니다.”
11시45분경 기장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승객 김병윤씨(70)는 안전띠를 단단히 맨 채 긴장했다. 김포공항을 출발하기 전 매표창구 직원이 “포항 상공의 기상이 좋지 않아 비행기가 회항할 수도 있다”고 말한 것이 못내 꺼림칙했다.
시계가 나빠 1차 착륙을 포기한 뒤 2차 착륙을 시도하기까지 14분간 비행기는 계속 포항공항 상공을 선회했다. 이 짧은 순간이 마치 14년처럼 길게 느껴졌다.11시59분경 “2차 착륙을 시도하겠다”는 기장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온 뒤 비행기가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기체가 심하게 흔들렸고 비행기는 멈춰 설줄 모른 채 계속 미끄러졌다.
갑자기 ‘꽝’하는 소리가 들렸고 김씨는 곧바로 정신을 잃었다.
승객 이용선씨(43)도 심한 충격으로 정신을 잃었으나 잠시 후 깨어났다.
여기저기서 공포에 질린 비명과 신음소리가 들렸다. 기내는 떨어져내린 산소마스크와 물건들로 아수라장으로 변했지만 기내방송은 들을 수 없었다.
이 때 승객 누군가가 “침착합시다, 침착…”하고 외쳤다. 어쩔줄 모르던 승객들도 차츰 안정을 되찾았다. 승객중 한 명이 비상문을 열었고 승객들은 비상문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갔다.
승객들은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부상자와 노약자를 부축해 먼저 내리게 하는 등 질서를 지켰다.
이씨는 기체가 심하게 부서진 채 수증기가 하늘로 치솟는 비행기를 뒤로 하고 공항 출입구까지 1천여m를 걸어 나와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포항〓정용균기자〉jyk061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