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말씀 마세요. 저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16일 오후 경북 포항시 북구 죽도2동 동국대 포항병원 515호실. 15일 포항공항에서 발생한 대한항공(KAL)여객기 착륙사고로 발목을 다쳐 입원중인 김금자 (金金子·여·47·포항시 북구 청하면)씨가 한 중년 남자의 손을 잡고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승객과 승무원 등 77명이 다친 15일의 KAL기 사고 현장엔 더스틴 호프먼 주연의 영화 ‘리틀 빅 히어로’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KAL기의 의인(義人)들’이 있었다. 그 주인공 중 한명은 평범한 시민인 이균식 (李均植·53·포항 세화관광대표)씨.
승객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씨는 먼저 자신이 앉아있던 좌석(49B)옆 날개쪽 비상문을 열었다. 그리고 쉬지않고 “침착”을 외치며 승객들을 안심시킨 뒤 차례로 한사람씩 날개를 밟고 내려가도록 부축했다.
곧 뒤편에 있던 승무원 장우정 (張宇廷·22·여)씨도 나섰다. 사고순간 충격으로 한동안 정신을 잃었던 장씨는 전기가 끊겨 컴컴한 기내에서 이씨가 연 비상구를 통해 승객들이 뛰어내리는 모습을 보고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빨리 꼬리부분의 비상구를 열고 승객들을 유도했다.
“비상구를 여니 갑자기 전선과 광케이블이 어지럽게 흘러내렸어요. 그 순간 승객들이 감전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저도 모르게 전선을 한 손으로 덮석 움켜쥐고 승객들을 대피시켰습니다.”
두 사람의 도움으로 비상문을 빠져나온 승객은 70여명. 상당수는 부상정도가 심한 상태였다. 그러나 활주로에는 대기하고 있어야 할 구급차가 보이지 않았다. 이씨는 공항에 대기시켜 두었던 회사 버스에 부상자 46명을 태우고 동국대 포항병원으로 달렸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장도형씨(48)는 “이씨가 아니었더라면 훨씬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병원수송도 늦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항〓정용균·정재락기자〉jyk061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