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마라톤]허영진씨 목발짚고 풀코스 완주

  • 입력 1999년 3월 22일 07시 48분


21일 밤 어둠이 짙게 깔린 경주 세계문화엑스포광장. 국내 스포츠 사상 최대인 1만1천여명이 참가해 열기를 뿜었던 제70회 동아마라톤의 현장도 이 시간 모든 것이 끝나고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일단의 떠들썩한 소리가 이 고요를 깨고 있었다. 그곳에는 목발에 의지한 한 젊은 청년이 비틀거리면서, 그러나 당당하게 한발 한발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힘내’ ‘다왔어’ ‘해낸거야.’ 격려의 외침도 쉴새없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골인 순간 그는 어떤 찡그림도 없이 환한 얼굴로 주위 사람을 껴안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오전 11시 출발, 밤 8시53분 골인. 무려 9시간53분간의 사투. 그것은 차라리 한편의 인생드라마라 해도 좋았다.

지체 장애인 허영진씨(30). 그는 비록 다리는 불편하지만 의지만은 굳건히 서야 한다며 목발을 짚은 상태로 마라톤에 도전했다. 그것도 건장한 일반인도 이루기 힘들다는 풀코스를….

“외롭고 힘들었어요. 겁도 많이 났어요.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직접 체험해보리라 생각하고 도전했는데 이렇게 어려운 길인줄 미처 몰랐습니다. 도중에 그냥 쓰러져 포기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이것을 이기지 못하면 이 세상에서 다른 무엇도 이기지 못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는 자신은 모 한의과대를 나왔지만 법관이 되려고 고려대 법대에 진학해 졸업했으며 지금은 사법고시 준비를 하고 있노라고 했다.

“이런 일을 했다고 해서 나의 미래가 남의 입에 오르내리며 왜곡되는 것은 싫습니다.”

그는 다른 정상인들처럼 이날 레이스를 한 소감 외에는 더이상 말이 필요없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저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당당한 모습과 이를 굳이 다른 사람에게 과시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그의 침묵. 그것은 이 세상에 대한 무엇보다 ‘큰 소리’였다.

〈경주〓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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