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청장, 소각장 반발무마 관사 눈속임 구입

  • 입력 1999년 3월 23일 19시 12분


서울 강남구 일원동 수서아파트 115동 502호는 폐가(廢家)나 다름없다. 115동 60가구 중 이 아파트만 2년이 넘도록 빈 채로 방치돼 왔다.

23일 오전 1층 현관의 502호 우편함에는 먼지에 뒤덮인 우편물 20여통이 들어 있었고 이 중에는 다음달 5일부터 전기와 도시가스 공급을 중단하겠다는 경고장도 눈에 띄었다.

이웃 주민들도 궁금하게 여기는 이 집 주인은 현 강남구청장인 권문용(權文勇)씨. 그러나 권구청장은 이 집에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다.

이 아파트(22평형)는 96년 11월 강남구청이 구청장관사로 쓰기 위해 1억1천9백만원을 들여 구입한 것. 당시 수서아파트 주변에 쓰레기소각장이 들어선다는 계획이 발표되면서 주민들이 맹렬히 반대하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이 아파트를 구입했다.

구청측은 이 아파트를 구입한 뒤 “구청장이 살 정도로 안전하고 깨끗한 쓰레기소각장이 들어선다”며 주민반발을 누그러뜨리는 홍보에 열을 올렸다. 그 결과 주민들의 반발이 어느 정도 수그러들었고 예정대로 소각장건립이 추진돼 올해 12월 완공예정이다.

아파트 경비원 김모씨(55)는 “2년반 동안 구청장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며 “가끔 구청 직원들이 찾아와 신문이나 고지서 등을 수거하고 집 안팎을 청소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구청측은 “주민들과 소각장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회의실 용도로 쓰려고 했지만 별로 활용하지 못한 게 사실”이라며 “아파트가 너무 좁아 관사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 매각을 추진중”이라고 밝혔다.

주민 정모씨(45)는 “살지도 않을 아파트를 구입해 주민들을 속이고 이제 와서 관사로는 부적절하다고 말하는 것은 또 한번 주민을 기만하는 처사”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서정보·이명건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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