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시위」가 달라졌다

  • 입력 1999년 3월 28일 19시 43분


지난 주말 전국 대도시에서 열린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가두집회는 모두 4만명이 참석한 대규모 행사였는데도 경찰과의 마찰없이 질서정연하게 치러져 시위문화의 좋은 선례를 남겼다. 참가자들은 집회를 마친 후 경찰이 막아놓은 통제선을 지켜가며 거리행진을 벌이고 자신들의 주장을 시민들에게 알렸다. 여경들이 포함된 경찰도 질서유지라는 최소한의 역할에 그쳤다. 집회장소 주변은 한때 교통 체증을 빚기도 했으나 과거 돌과 화염병이 난무하는 싸움터같은 시위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사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거의 사라진 과격시위가 올해들어 재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봄철 임금교섭 시기를 앞두고 이번 집회가 관심을 모았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평화적으로 진행된 이날 집회는 일단 이런 불안감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했다. 집회가 무사히 끝난 것은 노동단체 지도부가 준법시위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갖고 준비한 결과다. 민주노총은 사전에 경찰과 평화시위를 약속하고 조합원들에게 질서유지를 위한 실천계획을 전달했다. 한국노총은 시민 불편을 최소화한다는 취지에서 거리행진을 생략했다. 경찰은 앞으로 돌과 화염병이 동원되는 과격시위에서도 최루탄을 쓰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이번 집회를 치르면서 노동계나 경찰 모두 여론에 무척 신경을 쓴 듯한 인상을 주지만 겉으로 드러난 것 만으로는 매우 고무적이다.

올들어 대학가 집회를 포함해 최루탄과 화염병을 사용한 시위는 단 한차례도 없었으며 지난해에는 최루탄 사용 집회가 6차례, 화염병 투척 집회가 2차례에 그쳤다. 경제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은 되도록 참아보자는 공감대가 확산된 탓이다. 하지만 간단한 통계 숫자로 평화적인 시위문화가 정착되어 간다고 판단하기는 이를지 모른다.

1년 넘게 이어지는 과격시위의 공백상태를 평화시위 준법시위를 뿌리내리는 계기로 삼는 노력이 필요하다. 노동계뿐만 아니라 대학가도 마찬가지다. 화염병과 최루탄이 오가는 시위는 폭력 그 자체일 뿐 시위라는 이름을 붙이기조차 민망하다. 모처럼 자리잡은 평화시위를 새로운 시위문화로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IMF체제 만 2년째에 들어선 올해 시위현장에는 새로운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여러해 계속된 임금삭감과 동결에 따른 노동자들의 요구가 어느해보다 거셀 것이고 대량실업 대졸자의 취업난 등의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면 평화시위를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과격시위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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