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특전사와 해병대가 다음달 1일과 15일 각각 창설 41주년과 50주년을 맞는다.
해병대는 48년 여순 반란사건때 “상륙군이 없어 반란군을 완전진압하지 못했다”는 해군보고를 계기로 이듬해에 3백80명으로 출발했다. 특전사는 6·25전쟁 뒤에도 북한이 도발을 계속하자 58년 유격군 병력을 모아서 만든 ‘제1전투단’이 발전한 것. 적은 인원과 보잘것없는 장비로 시작했지만 이들 부대는 6·25와 베트남 전쟁, 대간첩작전 등을 통해 그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이들 부대에는 ‘아픈 경험’이 있다. 특전사가 80년 광주시민들과 유혈충돌을 하고 이보다 20여년 앞선 5·16 때는 해병대가 한강다리를 앞장서 건넌 것. 그같은 ‘정치적 사건’에 연루된 ‘과거’ 때문에 뼈아픈 진통도 겪었다. 해병대 사령부는 73년 해군산하로 축소됐다 14년만인 87년에 부활됐고 특전사는 약 20년의 세월이 지난 이달초 5·18 피해자와 화해의 자리를 가져 ‘마음의 부담’을 벗었다.
특전사와 해병대는 대국민 이미지 개선을 위해 꾸준히 노력한데다 IMF사태를 계기로 극한 상황을 경험하고 이겨내자는 사회분위기 때문에 지원자가 크게 늘어 고무된 상태.
특전사 경쟁률은 90년까지 평균 3.1대1에서 4.7대1(91∼94년)→5대1(95∼98년)에 이어 올해는 11대1을 기록하고 있다.
해병대 경쟁률도 2.33대1(96년)→2.35대1(97년)→2.5대1(98년)→3.3대1(올해)로 해마다 증가. 어떤 지원자는 5,6차례나 불합격하자 사령관에게 입대를 간절히 호소하는 편지를 보내 결국 소원을 이룬 경우도 있다.
〈송상근기자〉songm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