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교육현장 中]학부모 교사不信 한계 넘었다

  • 입력 1999년 4월 5일 20시 00분


인천 S고의 이모교사(38)는 몇달 전 한 학부모로부터 당한 봉변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40대 후반의 남자 학부모가 교무실로 들어와 “내 아이를 왜 때렸느냐”며 다짜고짜 자신의 뺨을 휘갈겼던 것. 동료 교사들의 제지로 더 이상의 봉변은 면했지만 이교사는 이 사건 이후 학부모가 무섭게 느껴졌다. 교사를 믿고 자녀를 맡기는 예전의 학부모가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서울 S여고 김모교사(34)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지난해 11월 말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들어서는 그에게 40대 여자 학부모가 다가오더니 “도대체 학생지도를 어떻게 하는 거냐”며 따발총처럼 쏘아붙였다. 그 학부모의 딸은 수업도중 갑자기 교실밖으로 나가버린 일이 있었다. 김교사는 그때 일을 생각하면 요즘도 억장이 무너진다. 교사가 학부모로부터 당하는 이런 ‘수난’은 이젠 드문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교사가 직접 당했거나 옆에서 지켜본 경험이 있을 정도다.

학부모들의 항의내용도 다양하다. 예전에는 교사의 무리한 체벌이 학부모들의 불만과 항의의 대상이었지만 요즘은 수업이나 학생지도 방식에 이르기까지 학교의 모든 일이 항의의 대상이 됐다. 한마디로 ‘학부모가 교사의 눈치를 보던 시대’에서 ‘교사가 학부모의 눈치를 보는 시대’로 바뀐 셈이다.

새학기 들어 의욕이 넘쳤던 서울 S중 김모교사(29·여). 학생들을 좀 더 열심히 가르치고 싶었던 김교사는 다른 반보다 30분 일찍 등교토록 했다. 그리고 늦게 등교한 학생들에게는 벌을 줬다. 그러나 그 의욕은 오래 갈 수 없었다. 교무회의 도중 교장선생으로부터 “왜 쓸데없이 아이들을 일찍 등교시켜 항의전화가 빗발치게 하느냐”는 지적을 받았다. 칭찬은커녕 되레 질책을 받은 김교사는 학교교육의 현주소를 절감했다.

교사와 학부모와의 관계가 왜 이처럼 악화되고 있을까.

무엇보다도 교사들에 대한 학부모들의 불신 때문이라는 게 교육계의 진단이다. 불신은 막연한 불안감을 부르고 이는 또 불신을 증폭시킨다는 것.

깊어지는 불신의 골은 교사에 대한 ‘감시’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부 아파트단지의 학부모들이 망원경으로 학교수업을 감시한다는 것은 이제 구문(舊聞)에 속한다.

교사와 학부모가 이같은 상호 불신에서 벗어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서울 K고 최모교사(34)는 “일부 교사들의 촌지, 체벌문제 등으로 전체 교사들에 대한 불신이 커졌지만 학교와 선생을 믿고 학생을 맡겨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참교육학부모회 조수영(趙修暎·30)총무국장은 “교사들도 학교교육의 동반자인 학부모들과의 대화를 늘리려는 노력을 해주었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이현두·김상훈·윤상호기자〉ruch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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