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사건 상고심 담긴뜻]검찰「내용상 승리」

  • 입력 1999년 4월 9일 19시 54분


김현철(金賢哲)씨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결과적으로 검찰과 현철씨, 정치권 모두의 부담을 피해간 ‘절묘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재판부는 우선 현철씨의 혐의내용, 즉 검찰의 공소사실을 대부분 유죄로 인정함으로써 문민정부 당시의 ‘살아 있는 권력의 비리’를 처단해야 한다는 명분과 검찰의 체면을 지켜줬다. 그러나 한편으로 ‘사소한’ 문제로 파기환송을 택함으로써 현철씨의 구속집행을 늦췄다. 검찰에는 내용상의 승리를, 현철씨에게는 형식상의 실리(實利)를 안겨준 것이다.이는 정치권에도 가장 부담이 적은 결과가 됐다. 정치권에서는 최근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의 돌출발언으로 전정권과 현정권이 미묘한 갈등을 일으키는 상황에서 현철씨의 상고가 기각돼 구속집행이 되는 상황을 상당히 부담스러워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판결은 이같은 ‘정치성’에도 불구하고 판결내용 자체만을 놓고 볼 때 적지 않은 의미를 담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검찰이 처음으로 기소한 조세포탈을 적용한 원심판결을 최고법원이 명시적으로 인정함으로써 대가성 없는 ‘검은 돈’에 대한 처벌의 길을 터놓았다는 점이다. 재판부는 특히 “조세포탈죄는 가차명 계좌 사용 등 부정한 방법이 동원되는 것으로 충분하며 조세포탈의 목적과 의도는 필요하지 않다”고 함으로써 그 적용범위를 폭넓게 인정했다. 법원 관계자들은 대법원이 비록 원심을 파기했지만 이같은 조세포탈의 법리를 명시적으로 밝혔기 때문에 파기환송심에서 조세포탈죄가 그대로 확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파기환송된 부분도 향후 재판의 대세를 좌우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현철씨가 이성호 전대호건설 사장에게 50억원을 맡기고 이자조로 받은 12억2천만원을 그대로 뇌물로 보고 알선수재혐의를 적용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이 돈은 ‘정상적인’ 이자로서 뇌물이 아니며 다만 이 전사장이 ‘돈을 맡아 관리하면서 이자를 정기적으로 준 것’이 ‘금융상의 편의’에 해당한다며 이 편의 자체를 ‘뇌물’로 인정했다.

따라서 이 부분은 검찰이 공소장을 변경하면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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