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8시반경 서울 경기고의 월요 조회시간. 학생회장 이성욱(李晟旭·18)군이 선생님께 드리는 편지를 읽고 있는 모습이 51개 학급의 TV모니터에 방영되고 있었다.
“저는 그것이 바로 스승에 대한 ‘참된 감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선생님, 아니 저희들을 올바른 곳으로 이끌어 주시는 스승님,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이군의 떨리는 목소리에 2천4백여명의 경기고 학생들은 모두 숙연해졌다. 각 반에서 이를 함께 지켜보던 담임교사들도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이날의 행사는 한달전 담임교사의 체벌에 폭력으로 맞선 동료학생의 잘못에 대해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사죄의 자리였다. 51개 학급 대표들이 모여 각각 담임교사앞으로 ‘사죄의 편지’를 작성하고 이를 대표하여 이군이 자신이 쓴 편지를 낭독한것.
“그 사건은 바로 우리 경기인들의 자화상이었습니다… 앞으로 저희들은 이 뼈아픈 상처를 내일을 밝혀주는 등불로 삼아 ‘교사와 학생’이 서로 믿음을 주고 아끼는 학교를 만들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간곡한 목소리로 스승에게 사죄를 청한 이군은 다시 김지태(金知泰)교장선생님에게 못난 제자들의 잘못에 종아리를 때려달라며 ‘사랑의 회초리’를 바쳤다.
길이 50㎝ 폭 2㎝의 이 나무회초리는 학생회의 요청에 따라 학부모들이 직접 주문제작해 교사들 손에 쥐어준 1백20개의 회초리중 하나.
이군은 이번 일이 학생회 스스로 결정한 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처음에는 저희도 그저 어느 한 학생의 잘못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저희 모두의 문제라는 생각에 모두가 나서기로 했습니다.”
교사들의 굳었던 표정에서도 오랜만에 흐뭇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김남수(金南秀·54)생활지도부장은 “아이들이 스스로를 때려달라고 쥐어주는 매에 어떻게 감정이 들어갈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