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이 병역을 면제받는 비율은 스무명에 한 명꼴이다. 군에서 오죽하면 병역면제자를 ‘신의 아들’이라고 부를까.
구단이나 선수들의 의견은 다르다. 선수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건장해 보이지만 신체의 특정 부위를 집중적으로 사용하고 거친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속으로 골병이 들어 고생한다는 것.
선수들은 한창 뛰어야 할 나이에 군대에서 2년여 ‘썩고’나면 경기감각과 근육을 영영 회복할 수 없어 선수생명이 끝장난다고 말한다.
운동선수에 대한 국민의 눈길도 이중적이다. 박찬호의 병역특혜 논란이 좋은 예. “세계적인 스타를 군복무때문에 잃을 수는 없다”는 주장과 “국방의 의무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는 반론이 팽팽히 맞섰다. 이 논란은 박찬호가 지난해말 아시아경기 금메달로 병역혜택을 받으면서 끝이 났다. 하지만 모든 선수들이 박찬호처럼 될 수 없는 것이 우리 스포츠계의 현실이다.》
◇프로야구
지난해 아시아경기 야구대표팀인 ‘드림팀’에 양준혁 이승엽 정민태 등 정상급 선수들은 제외돼 팬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이유는 이들이 이미 군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었다. 여론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병역 미필자로만 짜여진 드림팀에는 ‘병역면제팀’이라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야구계의 이런 무리수는 군복무가 선수에게 ‘사형선고’처럼 인식돼 있는데다 구단으로서도 거액을 투자한 선수를 경기에 내보내지 못하기 때문.
투수 K씨는 95년 15승을 거두며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이듬해 공익근무를 마치고 난 후 좀처럼 예전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그는 97년 3승, 98년 1승에 머물다 팀에서 방출됐다. 10승대 투수였던 N씨는 군복무 후 단 한 해도 5승을 넘지 못하고 은퇴해야 했다.
군대에 다녀온 선배들의 ‘몰락’을 지켜본 선수들은 어떻게 해서든 병역을 피하려고 한다. 병무청 직원에게 뇌물을 주고 면제를 받은 혐의로 최근 물의를 빚었던 LG 서용빈, 형의 허리디스크 CT촬영 필름을 이용해 병역면제 판정을 받은 혐의로 91년 구속됐던 J씨 등이 이런 케이스. 정상급 투수였던 J씨는 그 후유증으로 2년 동안 단 1승에 그치는 등 극심한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축구 농구와 달리 프로야구 선수들은 그동안 상무팀에 갈 수 없었기 때문에 군 기피증이 더욱 심했다.
선수들의 면제 사유는 허리 팔꿈치 어깨 등 운동에 주로 사용되는 신체부위의 부상. 구단도 선수들의 병역면제에 암묵적으로 동조한다는 의혹을 받곤 한다. 한 선수가 부상을 하면 이를 외부에 대대적으로 알리고 이 시기에 신체검사를 받아 면제를 받으면 1년간 쉬게 한다는 것. 군 면제자가 곧바로 잘 뛰면 뒷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듬해 그 선수는 군면제자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좋은 성적을 거둔다.
◇프로축구
한 축구인은 “스타선수 중에 일반 현역병 출신을 본 적이 있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만큼 적다는 의미다. 군복무로 2년여의 공백이 생기면 선수생명이 끝장난다는 것.
축구전문가들은 “선수가 6개월만 운동을 쉬어도 다리 근력이 일반인 수준으로 떨어진다”고 말한다.
일부 선수들중에는 현역복무를 피하기 위해 자해(自害)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 축구관계자는 귀띔한다.
가장 대표적인 자해방법은 무릎연골 파열시키기. 신체검사 시기에 맞춰 교묘한 방법으로 무릎연골을 망가뜨려 병역을 면제받는다. 망가진 연골은 6개월 정도 잘 치료하면 축구하기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아문다는 것. 또 무거운 아령을 들었다가 갑자기 손을 아래로 떨어뜨려 어깨뼈를 탈골시키는 방법도 ‘애용’된다는 후문이다.
청소년 국가대표 출신의 한 축구인(31)은 “병역면제 판정을 받기 위해 일부러 허리 수술을 받는 선수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스타급 선수 중에는 부상을 적절히 이용해 병역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 인사는 말했다. 부상 때문에 국가대표 자격을 반납하는 선수들 중에는 ‘병역면제’를 노린 경우도 있다.
돈을 벌어야 하는 프로선수들의 특성상 군복무기간 동안 포기해야 하는 거액의 연봉도 군기피 유혹을 부추기는 한 요인이다.
한 구단 관계자는 “군대를 안가기 위한 선수들의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군에 입대하더라도 마음놓고 운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는 한 선수들의 군회피 현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프로농구
상무팀이 스타플레이어를 어느 정도 소화해주는데다 장신 선수들은 현역근무를 면제받기 때문에 병역회피 현상이 프로야구 축구보다는 상대적으로 덜한 편. 그러나 30대초면 은퇴연령이 되는 현실에서 2,3년 동안 군대생활을 하고나면 사실상 코트 복귀가 힘들다.
한 구단관계자는 “A급선수라도 한동안 벤치에서 쉬게 되면 금방 C급선수가 되는데 하물며 1년이상 쉰다면 선수생활이 끝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농구선수는 발목에서 시작해 무릎 허리 순으로 ‘고장’이 나는 것이 ‘숙명’이어서 웬만한 선수치고 수술경력이 없는 사람이 거의 없다. 프로리그에서 뛰다 부상을 하면 재검을 계속 신청해 면제를 받는 경우가 많다.
연봉 7천만원대의 K선수는 발목 인대가 파열돼 독일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신검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는 결국 허리디스크를 호소해 공익근무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앞으로도 부상 가능성이 많다고 판단, 한차례 더 재검을 받을 작정이다. 신체부위 중 세곳 이상 4급 판정을 받을 경우 면제가 가능하기 때문.
지난해 공익근무요원으로 훈련소에 입소했다가 허리디스크로 귀가조치된 또다른 K선수는 곧바로 시작된 프로리그에 투입돼 한 시즌을 뛰었다. 이처럼 선수들 중에는 ‘운동은 할 수 있지만 군대생활은 어려운’ 체질이 많은 셈이다.
▽특별취재팀〓오명철차장 이병기 이철희 박현진 윤종구 부형권기자
▽체 육 부〓장환수 배극인 전 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