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숨기고 보기」 「떠들고 보기」

  • 입력 1999년 4월 19일 18시 58분


이른바 고관집 절도범 파문을 지켜보면 두가지의 개탄스러운 악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우선 검찰이나 경찰이 직위가 두드러지거나 유명인사 관련 사건이라면 조건반사적으로 감추고 보는, 그러면서도 당연히 밟아야할 기본적인 수사 절차는 소홀히 하는 관행이 다시 한번 확인된 것이다. 다음으로 야당이 확인된 사실보다 한술 더 떠 의혹을 기정사실처럼 몰아가고, ‘일단 떠들고 보자’는 식의 대응을 하고 있는 점이다.

첫째, 검찰 경찰이 초동단계에서 사건의 파장을 의식해 사실확인도 제대로 않고 숨기고 보는 데 급급했던 증빙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절도범이 전북지사 관사에서 훔쳤다고 주장한 12만달러 문제만 해도 피해현장확인이나 피해자 진술확보같은 당연한 절차조차 소홀히 했다. 이제와서 가방의 지문을 채취한다느니 법석을 떠는 상황인 것이다.

김성훈 농림부 장관의 경우는 어떤 의미에서 ‘숨기고 보기’의 피해자라고 할 수도 있다. 뒤늦게 제3의 피해자가 문제의 그림등을 도둑맞았다고 나타났지만, 초동단계에서 검찰과 경찰이 현장확인을 하고, 피해자를 만나는 절차를 제대로 밟았다면 아무 소란이 없었을 것이다.

안양경찰서장 관사에서의 돈봉투 절취도 현장확인이 없었다고 한다. 그저 ‘윗분’이니까 전화로 확인해본 정도라고 하니 그 내용이나 액수에 대해 국민이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아가 당시 시장보궐선거가 있었기 때문에 정치적 파장을 부르지 않기 위해 사건을 은폐축소했다는 의구심까지 낳고 있다. 검경이 쉬쉬하면서 본연의 임무에 소홀히 한 결과 불필요한 오해와 물의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챙겨야할 현장이나 증거물을 다시 보고 관련자들을 철저히 조사하여 한 점 의혹을 남기지 않는 수사와 규명이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야당의 대응도 문제가 있다. 절도범 말에 대한 신빙성 문제를 먼저 검토해보고 공개해야지 그렇지 않을 경우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난을 면치못할 것이다. 야당 의원 일부는 18일 ‘김강룡씨를 만났더니 장관집 두 곳을 더 털었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절도범이 진정서를 낸 곳이 야당이고, 야당 변호사가 처음 그를 접견했으므로 야당이 이를 문제삼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하지만 18일 제기한 의혹은 절도전과 12범의 주장인 만큼 최소한의 확인절차를 통해 실명으로 공표하든지, 아니면 좀더 치밀한 조사를 거쳐 공개하는 것이 진상규명에도 도움이 되고, 공당(公黨)다운 태도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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