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서울 송파구 방이동 백제고분의 공중화장실. 곱게 화장을 한, 청소부 복장도 아닌 주부 10여명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연신 훔치며 분주하게 물걸레질을 해댔다. 손길이 닿는 곳마다 호텔 화장실 못지 않게 금세 깔끔해졌다.
이들은 송파구에 사는 주부들로 구성된 ‘깨끗한 화장실 관리 시민모임’ 회원들. 지난달 30일 송파구가 ‘화장실 문화를 개선하자’는 취지로 구민을 대상으로 모집했다. 자율봉사가 원칙.
“만약 돈을 벌기 위해 이 일을 한다면 창피해서 못할 거예요. 내 자식 내 남편을 위해 봉사하는 건데 화장실 청소면 어때요.”
회장 여복경(39)씨의 말이다.
회원들은 잠실동 서울놀이마당, 오금동 오금공원 등 집에서 가까운 곳의 공중화장실을 나눠 맡아 관리한다.
또 비누 휴지 등 편의용품 비치 여부나 악취 정도, 조명시설 상태 등을 점검해 1달에 1,2차례씩 구 환경과에 개선요구서를 제출한다. 이 날은 구(區) 관내 모든 공중화장실에 들러 청소를 하는 날이기도 하다.
하지만 청소 등 눈에 보이는 활동은 기본이다. 보다 신경을 쓰는 부분은 화장실 문화를 파헤치고 분석하는 것.
회원 김혜경(金惠慶·49)씨는 “예상 외로 여자화장실이 남자화장실보다 더 지저분했다”며 “이처럼 미처 알려지지 않은 화장실의 현실을 제대로 짚고 분석하는 것도 임무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이들은 때로 창피함이나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목적 달성을 위해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용감한 아줌마’가 되기도 해야 한다.
“일본엔 남의 집 화장실을 청소하면 복을 받는다는 교리에 따라 청소봉사를 하는 종교도 있대요. 누군가가 하지 않으면 안될 일을 하는 것이 참된 봉사가 아닐까요.”
회원 양미자(梁美子·35)씨의 ‘봉사론’이다.
이 모임의 장기계획은 공중화장실에 테마 부여하기.
“음악이 흐르고 꽃향기가 나는, 도자기와 그림이 전시된 그런 화장실을 만들어 갈 거예요.”
〈이명건기자〉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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