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서울지하철 노조집행부가 농성중인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만난 노조원 A씨(36)는 “나 자신이 안타깝다. 정말 미치겠다”고 한숨지었다.
A씨가 말한 노조의 보복이란 파업을 열흘 앞둔 9일 지하철노조가 임시대의원대회에서 결의한 ‘반조직 행위자에 대한 처벌’을 뜻한다.
본보 취재팀이 입수한 노조의 ‘총파업 투쟁 지침서’ 중 ‘반조직 행위자 처벌지침’에 따르면 ‘파업에 참여하지 않거나 파업대열에서 이탈한 노조원’에 대해선 노조가 어떤 식으로든 ‘처벌’하도록 돼 있다.
노조가 처벌지침을 통해 노조원에게 제시한 ‘반조직 행위’는 △처음부터 파업에 불참하고 업무를 수행하거나 현장복귀를 선동, 종용하는 행위(1급) △위원장 명령에 의하지 않고 조기복귀하는 행위(2급) △지도부의 명령 없이 조직을 이탈하거나 조합의 투쟁방침에 반하는 행위(3급) 등이다.
또 현장간부 이상 집행간부의 반조직행위는 ‘특급’으로 분류해 특별한 제재를 가한다고 명시돼 있다.
노조는 파업기간 중 이같은 반조직 행위를 가려내기 위해 농성장 등에서 날마다 파업 참여자의 서명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측은 파업이 끝난 뒤 대의원대회에서 처벌방법을 결정할 예정. 그러나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면 파업기간 중이라도 집행부가 처벌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노조원들에 따르면 노조측의 처벌은 노조원들 앞에 반조직 행위자를 불러내 사과를 하도록 하거나 다른 노조원과 함께 작업을 시키지 않는 등 조직적으로 해당 조합원을 고립시키는 것이다.
A씨는 “이같은 노조의 처벌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실제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금방 회사를 그만두고 싶을 정도”라며 “요즘 집에 전화만 하면 아내와 아이들이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고 울먹이는데 후환이 두려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사측의 ‘압박’도 점점 거세지고 있다. 공사측은 23일 각 노조원 가정에 등기속달로 공문을 보내 “인사규정에 따라 연속 7일 이상 무단 결근시 직권면직할 예정”이라고 통보했다. 서울시와 공사측은 또 지연 학연 등 연고가 있는 직원들을 동원해 노조원들의 집을 방문하고 전화를 걸어 복귀를 설득하고 있다.
한편 한국노동연구원 선한승(宣翰承)노동연구조정실장은 “노조가 처벌지침을 만들어 조합원의 자유로운 의사표시를 규제하는 것은 조합원의 결속력을 높이기 위한 고육책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노조활동은 자율성을 생명으로 한다는 점에서 지하철노조의 처벌지침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김경달·이명건기자〉gun4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