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8일 국회 본회의장. 선거법 위반과 관련해 대법원 선고를 하루 앞두고 있던 한나라당 홍준표(洪準杓)의원이 고별사를 했다.
그는 고별사에서 “나를 마지막으로 정치보복을 끝내고 여야 정치권이 대화하기를 바란다”며 표적 사정의 희생자임을 거듭 주장했다.
홍의원이 본회의장을 떠난 후 홍의원이 검사시절 주도했던 슬롯머신 사건과 관련해 구속됐던 자민련의 박철언(朴哲彦)이건개(李健介)의원이 담소를 나누는 장면이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잡혔다. 이 사진은 다음날 각 신문에 ‘가는 자와 남는 자’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박의원과 이의원은 93년 검찰의 수사에 대해 표적사정임을 주장해 온 사람들. 당시 수사검사중 한 명이었던 홍의원은 이들의 주장에 대해 “검찰의 수사를 비켜가기 위한 정치적 술수”라며 논쟁을 할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6년이 지나 검사에서 의원으로 신분이 바뀐 홍의원이 정치적 복선이 깔린 사정의 희생자임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표적사정의 희생자임을 내세우는 사람은 홍준표 전의원뿐만이 아니다.
현재 재판이 진행중인 한나라당의 이기택(李基澤)김윤환(金潤煥)백남치(白南治)이부영(李富榮)의원 등도 모두 검찰의 수사를 표적사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당과 사정관계자들은 “표적사정은 말도 안된다”며 “야당 정치인에 대한 검찰수사를 모두 표적사정이라고 몰아붙이면 사실상 비리 정치인을 처벌하지 말라는 말과 같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의 표정사정 논란과 관련, “어느 쪽의 주장이 옳은지는 법정에서 가려지겠지만 비리혐의로 처벌된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의 정치적 재기는 ‘가치의 전도’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지적한다.
‘어제의 부패 정치인’이 ‘오늘은 국민의 대표’라는 웃지못할 현상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함승희(咸承熙)변호사는 “비리 정치인의 정치무대 복귀는 국민으로 하여금 부정부패에 대한 운명론적 패배감에 빠지도록 한다”며 “정부나 정치인에 대한 심각한 불신은 법의 단죄가 통하지 않는 정치권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상당수의 정치인들이 불구속기소 상태에서 재판을 받으면서 법정출석을 하지 않아 시민단체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가장 심각한 부작용은 국민의 법에 대한 불신이다.
한 중견검사는 “정치적인 고려때문에 검찰이 비리 정치인을 처벌하지 못하고 사면으로 풀려난 정치인이 국회의원으로 선출될 때 검사들은 비애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며 “최근 법조계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이런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비리 혐의로 처벌받는 공직자중에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는 공직자는 거의 없다는 것이 검사들의 판단이다. 공무원들 사이에 “더 많은 돈을 받은 정치인은 활개를 치고 다니는데 왜 나만 처벌을 받느냐”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부패 불감증이 폭넓게 번져 있다는 것.
이런 악순환의 고리는 어디서부터 끊어야할까.
연세대 법대 허영(許營)교수는 검찰 등 사정기관의 독립성을 그 첫째 과제로 꼽는다.
그는 “검찰이 여야구별없이 검찰권을 행사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야만 처벌을 받는 정치인이 표적사정 주장을 하지 못하게 되고 국회를 방탄막이로 이용할 수 없게 된다”면서 “이를 위해 특별검사제나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등 사정기관의 중립화를 위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면권의 남용도 문제. 정부수립이후 지금까지 80여차례에 걸쳐 사면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서울지법 형사부의 한 중견판사는 “언론에 크게 보도됐던 비리 정치인중 사면되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는 “사법부가 단죄한 비리 정치인에 대해 대통령이 정치적인 고려때문에 사면을 남발함으로써 적은 뇌물로 구속된 일반 공무원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힘 없는 자의 설움을 토로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고려대 함성득(咸成得·행정학과)교수는 “민주주의의 속성상 비리정치인이라할지라도 국민이 선거로 이를 용인한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정치제도를 개선해 비리정치인이 발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하며 부정부패 정치인을 용납하지 않는 유권자 의식도 키워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특별취재팀 ▼
오명철사회부차장 이병기 이철희 박현진 윤종구 부형권기자
watchdog@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