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죽을 각오」와 한국 사회

  • 입력 1999년 5월 2일 20시 32분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책을 썼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비평서를 낸 김경일교수(중문학)가 그 주인공. 유교 투성이, 유교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사회에 짙게 드리운 공자의 그림자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조상 숭배, 창의성 제약, 혈연적 폐쇄성, 생산직 멸시 같은 것이 유교에서 비롯한다는 진단이다.

▽반어법 같은 제목, 다소 과격한 논리전개가 저자 스스로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유림(儒林)에서 돌팔매질이라도 할까봐 ‘죽을 각오’라고 하는 것일까. 새삼스레 ‘맞아 죽을 각오로 쓴 한국 한국인 비판’이라는 책을 낸 일본인 이케하라 마모루의 엄살섞인 두려움을 상상한다. 그 내용이야 맞건 틀리건 차치하고, 목숨을 걸고 관점을 밝힌다는 제목이 어쩐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한국의 지적 풍토가 이분법적이고 독선적이라는 의미가 반사되는 대목은 아닐까. 학문과 문화는 해석하는 관점이 얼마든지 다를 수 있고 그래야 발전한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도 같은 테두리의 얘기다. 하지만 우리는 지나치게 이설(異說)을 배척하고 ‘거꾸로’ 보기를 통해 또다른 일면의진실을 파헤치는 노력을 억누른다. 나 아니면, 다수설이 아니면 ‘목숨’걸어야 할정도로.

▽민주주의나 문화는 ‘나’와 다른 견해를 존중하는 참을성 없이는 안된다는 데 공통점이 있다. 이를테면 유신이 끝나자마자 ‘박정희 흔적 지우기’가 일대 붐을 이루었다. 그러나 지금 당시의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도 ‘광화문’ ‘북악터널’같은 그의 필적을 없애자고 하지는 않는다. 감정이 북받쳐 돌을 던지고 세월지나면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은 이성과는 거리가 멀다. 죽이고 살리기에 매달리면 진실이나 양식, 순리의 싹은 돋아나지 않는다.

김충식〈논설위원〉sear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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