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고리대금 상륙]『오죽하면 日사채 쓰겠나』

  • 입력 1999년 5월 3일 19시 49분


『은행에서는 담보가 없으면 보증인을 세우라고 하는데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보증서달라고 아쉬운 소리하기가 어디 쉽습니까.』(D사 J사장)

“사채 잘못 써서 패가망신한 얘기를 여러번 들었어요. 단 하루라도 마음편하게 거래하고 싶습니다.”(자영업자 A씨)

일본 고리대(高利貸) 자금으로 사채 대출을 해주는 ‘A&O 크레디트’ 기사가 본보 3일자 A23면, B2면에 실리자 잠재고객들의 국내 금융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왔다.

이들은 “은행 돈은 빌리기 어렵고 사채업자를 찾아가는 건 꺼림칙한데 어떻게 하느냐”며 “대출이 계약대로 이뤄진다는 보장만 있다면 일본자금이라도 상관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이 은행 등 제도 금융권과 기존 사채시장을 향해 털어놓은 불만은 결코 새로운 내용이 아니지만 우리 금융시스템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정확하게 표현했다는 지적.

한 시중은행 직원은 “소비자에게 불신받는 한국 금융의 일그러진 단면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라며 씁쓸해했다.

▽여전히 높은 은행 문턱〓돈 굴릴 곳을 찾지 못한 은행들이 우량고객을 상대로 대출세일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대다수 서민에게는 먼 나라 얘기일 뿐.

서울 강남에서 건자재 납품업체를 운영하는 장모씨는 “‘은행 돈 쓰기가 쉬워졌다’는 뉴스를 들을 때마다 귀를 막는다”고 말했다. 그는 “불경기를 거치며 재무구조가 악화돼 대출심사조차 받을 수 없다”며 “자금사정이 좋으면 왜 남의 돈을 빌려쓰겠느냐”고 반문했다.

시중에 돈이 넘치면서 최근 일부 우량 중소기업의 신규대출 금리는 최저 연 6.0%에서 6.5%까지 떨어진 상황. 그렇지만 10년째 무역업을 해온 박모씨(40)는 “돈 쓸 곳이 없는기업에 대출제의가 쏟아지지만 정작 급전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돈의 씨가 마른 실정”이라며“금융기능에뭔가 문제가있는것같다”고한탄했다.

오랫동안 거래해도 꼬박꼬박 담보나 보증인을 요구하는 은행 관행도 성토 대상에 올랐다. 미국에서 귀국해 간이주점을 운영하는 임모씨(39·여·경기 용인시)는 “미국에서는 거래실적이 쌓이면 자동적으로 일정금액을 대출받을 수 있는데 한국의 은행들은 담보 대출만 고집한다”며 신용대출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사채업자 못믿겠다〓우리나라의 사금융 수요는 국민총생산(GNP)의 5∼6%, 금액으로는 연간 30조원을 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막대한 수요에도 불구하고 사채업자에게 사기당하지나 않을까 걱정해 사채대출을 겁내는 사람들이 많은 게 엄연한 현실.

화장품 도매업을 하는 안모씨(41)는 “악덕 업자에게 잘못 걸리면 큰 낭패를 본다는 건 보편적인 상식”이라며 “믿을 수 있는 업체로부터 약속한 만큼 이자를 내고 당당하게 빌려쓰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의 고리대 자금이 차라리 안전할 것’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회사원 박모씨(37)는 “일본 사람들이 다른 건 몰라도 계산만큼은 분명할 것”이라며 “믿고 거래해도 좋은 사채업자를 책임있는 기관에서 소개해 사회적 낭비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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