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의약분업 실현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가 작성해 제안한 의약분업 방안을 의사회와 약사회가 받아들임으로써 드디어 의약분업이 실시될 실마리를 찾았다.
이번에 발표된 내용은 지금까지 거론됐던 각종 방안 중 ‘완전한’ 의약분업에 가장 가까운 것이고 시민단체와 의약단체가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을 거쳤다. 이로써 이 어려운 제도가 일단 연착륙에 성공하는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시행초기 혼란 예상 ▼
이번에 합의된 내용은 소위 ‘완전’ 의약분업에 가까운 것이어서 변화의 폭이 매우 클 것이라는 의미도 된다. 병의원과 약국이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아졌다. 정부가 빈틈없는 준비를 해야 하고 국민도 큰 변화에 숨가쁜 적응을 해야 하는 부담도 생겼다.
우선 병원을 포함한 모든 의료기관에서 실시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규모가 큰 대학병원에서는 약국과의 거리가 멀어 불편이 가중될 것이고 희귀약제를 약국이 보유하지 못할 경우에는 조제의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환자마다 늘 이용하는 약국을 미리 정해 두자는 ‘단골 약국’ 제도를 제안하고 있지만 병원과 약국의 협조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국민불편이 상당한 문제가 될 것이다.
주사제를 포함한 것도 의미가 크다. 현재 주사제가 자주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국민 불편의 우려가 크다. 그러나 주사제의 사용 자체가 줄어들면 불편의 폭이 줄어들 것이고 그것이 주사제를 포함시킨 의도일 것이다. 실제로 선진국에서는 외래 환자가 주사를 맞는 일은 아주 드물다.
언론 보도가 간과해 버렸지만 이번 의약분업 방안에는 한 가지 큰 변화가 숨어 있다. 이제 의사의 처방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일반 의약품도 ‘소분(少分)판매’는 금지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반드시 약갑에 포장된 상태로만 판매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환자가 자신이 먹는 약의 이름을 알 수 있고 약갑 속에 든 설명서를 볼 수 있어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장한다는 의미가 있다. 동시에 약사들의 소위 ‘임의 조제’를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 반면 이것도 국민에게는 당분간 매우 생소한 제도가 될 것이다.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의 분류, 그리고 의사가 지정한 처방을 약사가 동종의 약품으로 대체하여 조제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의사와 약사간에 끝까지 첨예한 대립을 보인 쟁점이었다. 결론은 격론의 대상이었던 일부 의약품에 대해서는 내년 3월까지 연구를 통해 분류를 확정하자는 것이고 약효 동등성(同等性)을 확보하는 조건으로 대체조제를 허용한다는 것이다.
▼올바른 약물사용 轉機 ▼
대체조제는 약국의 재고 부담을 줄여주고 국내 제약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바람직한 제도이지만 과연 1년 남짓한 짧은 기간에 모든 약품의 약효 동등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큰 과제로 남는다. 그런 걱정에도 불구하고 약효 동등성을 재평가하는 과정에서 의약품의 품질은 대폭 향상될 것이다.
이제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약효동등성의 확보에 큰 부담을 지게 되었다. 성공할 수 있을까? 이것이 이번 의약분업 방안의 핵심적인 준비사항이 되고 아킬레스건이 될 전망이다. 이 시도가 성공한다면 우리 국민은 엄청난 이익을 누릴 수 있다.
국민은 큰 폭의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사항을 유예기간이 전혀 없이 내년 7월에 동시 실시하기 때문에 ‘연습할’ 시간을 갖지 못하게 됐다. 초기의 충격이 아주 클 것이다. 의약분업은 단기적으로는 국민의 불편과 의료비의 일부 상승을 가져오지만 장기적으로는 약물 오남용 방지, 약제비 자체의 감소, 약품의 품질 향상, 의약품에 얽힌 각종 부조리의 해소 등의 큰 이점이 있다.
결국 의사 약사 및 국민이 지금 가지고 있는 약물 사용의 문화와 행태가 변화될 때까지는 불편하지만 일단 적응하고 나면 아무런 불편이 없는 제도가 될 것이다. 모든 당사자의 이해가 절실하다.
김용익<서울대교수·의료관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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