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핫이슈/지구당 폐지]손혁재/民意 막힐 우려

  • 입력 1999년 5월 13일 19시 34분


《여권이 중선거구제를 추진하면서 현행 지구당제를 폐지하는 방안을 마련해 쟁점이 되고 있다. 지구당 폐지론자들은 “‘돈먹는 하마’로 불리는 지구당을 폐지하지 않고서는 고비용 정치구조를 개혁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구당을 폐지하면 민의의 상향식 전달이 불가능해 중앙당의 독재화를 초래한다”는 반대론도 만만치 않다.》

여당이 정치개혁의 방향을 지구당 폐지 쪽으로 잡은 것은 잘못이다. 지구당 존폐 논란의 배경은 지구당이 ‘고비용 정치’의 주원인이란 현실 인식에 있다.

지구당은 뿌린 돈의 액수만큼 움직이고 돈이 들어가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정치자금과 선거비용의 단위가 커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구당 유지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당선만 되고 보자는 정치인들의 의식구조가 더 큰 원인이다. 지구당을 없애고 후원회나 연락사무소를 둔다지만 이 역시 현재의 지구당과 똑같은 방식으로 운영될 것이 뻔하다.

폐지론자들은 지구당이 없는 미국을 예로 들지만 한국과는 정치구조가 다르고 시민사회도 성숙돼 있다. 민의를 수렴해 정치에 반영하는 통로가 잘 마련돼 있는 미국과 수평 비교하는 것은 잘못이다. 영국 등 유럽국가들은 대부분 지구당이 강력한 자율권을 갖고 있다.

지구당은 정당의 이념과 정책을 알리고 지역주민의 여론을 수렴해 정책에 반영하는 기능을 한다. 당원을 모집해 정당의 인적 기반을 늘리고 당비를 납부해 정당 재정도 뒷받침한다. 각종 선거의 공직후보를 결정하고 선거운동을 직접 담당하는 등 많은 역할을 한다.

지구당을 없애면 정당이 더 비민주적으로 되고 시민 사회와도 동떨어지게 된다. 중앙당의 토대이자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인 지구당을 폐지하면 정당개혁의 핵심인 당원 중심의 상향식 정당운영은 불가능하다.

문제가 있으면 개선책을 찾아야지 지구당을 폐지하자는 것은 잘못이다. 결국 중앙당의 독재화를 초래해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우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지구당 폐지는 지방자치제 실시로 지방의 자율성이 확대되는 흐름에도 어긋난다. 지구당은 단순히 중앙당의 하부조직이 아니라 중앙당과 수평적 관계에서 지방정치를 주도하는 자율적이고 독자적인 정치단위가 돼야 한다. 오히려 지구당을 강화해 정당운영을 중앙당 중심에서 지구당 중심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것이 정당개혁의 지름길이다.

손혁재<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한국정당정치연 의정평가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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