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2일 발표한 고급 옷 로비 의혹사건 수사결과에는 고위공직자 부인 등 ‘상류층 사모님’들의 빗나간 의식과 소비행태가 일부나마 드러나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검찰발표에 따르면 연정희 배정숙씨 등 장관급 부인들은 98년 3월 대한적십자사의 ‘수요봉사회’에서 만나 ‘형님 아우님’하는 사이가 됐다.
또 이들은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사랑의 바자’ 행사장에서 라스포사 정리정사장을 소개받았다. 검찰총수의 부인 연씨가 재벌회장의 부인 이형자씨로부터 그림 선물 제의를 받은 곳도 바자회장이었다.
사회봉사 모임과 활동을 통해 다져진 상류층 사모님들의 친분은 무대가 고급의상실로 바뀌면서 과소비와 로비 의혹으로 얼룩졌다.
이들이 한데 어울려 고급 의상실을 누빈 것은 지난해 12월. IMF체제가 1년동안 계속되고 있던 때였고 정부는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자”며 국민을 독려(督勵)하던 시점이었다. 또 1년동안 계속된 기업 구조조정 등의 영향으로 실업률은 사상최대치에 이르렀고 거리에는 실업자와 노숙자가 넘쳐나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모님들은 당시의 사회분위기와는 상관없이 수요봉사회 모임에서 간단한 봉사활동을 마치면 고급의상실에서 이 옷 저 옷 입어 보며 쇼핑을 즐겼다.
연씨는 지난해 12월9일 수요일 수요봉사회 모임이 있던 이날 라스포사 의상실에서 투피스 2벌(30만, 40만원) 롱코트 1벌(70만원) 등 1백40만원어치의 옷을 샀다.
그 다음주 수요일인 16일에는 앙드레 김 의상실에서 80만원짜리 투피스와 40만원짜리 블라우스를 맞췄다. 이곳에서 연씨는 배씨로부터 30만원짜리 블라우스를 선물받기도 했다.
앙드레 김 의상실을 나온 연씨는 다시 고급 수입의류 판매점인 나나부띠끄에 가서 2백50만원짜리 니트코트를 외상으로 구입했다.
최고급 의상실인 페라가모에서는 옷은 사지 않았지만 수백만원짜리 옷을 입어보기도 했다.
12월26일 연씨는 라스포사를 다시 방문, 40만원짜리 재킷과 10만원짜리 스카프를 샀다.
연씨가 보름이 조금 넘는 동안 직접 또는 외상으로 사거나 선물받은 옷값의 총액은 5백90만원에 이른다.
연씨가 라스포사 매장에서 입어본 적은 있지만 자신도 모르게 배달됐다고 주장하는 문제의 호피무늬 반코트 값(판매가 7백만원, 할인가 4백만원)을 포함하면 1천만원에 육박한다.
검찰은 “연씨가 올해 3월과 6월로 예정된 두 딸의 결혼식 준비를 위해 의상실에 자주 갔다.
그러나 롱코트와 니트코트는 치수가 맞지 않는 등의 이유로 반품했으며 이밖의 옷을 다량으로 구입한 사실은 없다”고 해명해줬다.
연씨의 쇼핑에 동행한 상류층 부인들중에는 배씨 외에도 김정길(金正吉)당시 행정자치부 장관 부인, 천용택(千容宅)국방부장관 부인과 전용태(田溶泰)대구지검장 부인 등이 있었다고 검찰은 밝혔다.
연씨는 쇼핑에 검찰공무원을 동원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26일 라스포사 의상실에 갈 때 대검찰청 직원을 운전사로 데리고 간 것.
이 운전사는 연씨를 1월2일 기도원으로 모셔갔고 문제의 반코트를 라스포사에 돌려주는 일도 했다. 총장부인의 옷가방을 들고 다니는 일에 국민의 세금이 지불된 셈.
신동아그룹 최순영회장의 부인 이형자씨는 비슷한 시기 라스포사 정사장으로부터 밍크코트 두벌을 각각 3천5백만원과 2천5백만원에 구입, ‘IMF 한파’에 허덕이는 서민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