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이 승용차에서 내려 “김영삼”을 연호하는 환송객 70여명과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안녕히 다녀오십시오, 김영삼전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이라고 쓰인 플래카드는 YS의 퇴임후 첫 해외 나들이를 ‘축제’ 분위기로 이끌었다.
이때 “김영삼은 국민 앞에 속죄하라”는 고함과 붉은 페인트가 든 달걀이 날아와 YS의 왼쪽 눈 아래를 맞혔다. 깨진 달걀에서 흘러나온 붉은 페인트는 왼쪽 뺨을 거쳐 코와 입 언저리로 흘러 감색 양복과 흰와이셔츠로 번졌다. 마치 피범벅이 된 모습이었다. 당황한 경호원은 손수건으로 황급히 YS의 얼굴을 감쌌다.
잠시 휘청거리던 YS는 경호원이 건네준 양복으로 얼굴을 감싸고 곧바로 승용차로 피했다.
주차장에서 의전실로 통하는 길목에 숨어 있던 박의정씨는 미리 준비해 온 유인물을 뿌렸다. 경호원들은 달려들어 박씨의 손을 뒤로 꺾고 계속 외쳐대는 박씨의 입을 틀어막았다.
박씨는 유인물에서 “김영삼씨는 오늘 당하는 봉변을 국민이 내리는 응징으로 알고 깊이 반성하고 자숙하길 바란다”면서 “김씨는 하루속히 거제로 내려가 멸치잡이를 도우면서 국민 앞에 속죄하라”고 주장했다.
박씨는 이날 범행에 쓰려고 달걀을 특별히 준비했다. 달걀의 양쪽에 구멍을 뚫어 내용물을 빼내고 주사기로 빨간 페인트를 넣은 다음 비닐 테이프로 구멍을 막았다.
당시 김전대통령에 대한 근접 경호는 청와대 경호실 소속 경호원 4명이 맡고 있었고 의전실 주변에는 경찰이 배치돼 있었다. 그러나 사건 현장인 귀빈주차장은 경호의 사각지대였던 셈이다.
사건 직후 자택으로 되돌아간 김전대통령은 이날 오후 4시45분 일본항공 여객기를 타고 일본으로 향했다.
〈이현두기자〉ruch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