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형구씨 발언파장]검찰,폭탄주에 「폭탄」맞았다

  • 입력 1999년 6월 8일 20시 06분


검찰이 대형 ‘폭탄’을 맞았다.

진형구(秦炯九)대검 공안부장이 ‘폭탄주’를 마신 직후 한 발언으로 법무부장관이 퇴진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당사자인 진공안부장은 고검장 승진발령을 받은 상태에서 부임도 못하고 불명예 퇴진했다. 진검사장은 7일 점심 때 동료검사들과 양주 8잔에 폭탄주 4잔을 마신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에서 발생한 ‘폭탄주 사건’은 그동안 여러 차례 있었다.

김태정(金泰政)법무장관이 아끼는 후배 중 한 사람이었던 진공안부장의 ‘폭탄주 발언’으로 김장관이 퇴진한 것도 아이러니지만 김장관도 장관이 되기 얼마 전 폭탄주 기운으로 모언론사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솔직하게 털어놨다 취소하는 소동을 빚었다.

대전 이종기변호사 사건으로 물러난 심재륜(沈在淪)전대전고검장도 폭탄주의 대가. 폭탄주 10잔이 보통이다. 당시 검찰 수사팀은 그의 ‘폭탄주 값’을 이변호사가 대신 내주기도 했다고 해 문제를 삼았다.

또 지난달 7일 서울지검 동부지청 박모검사는 출입기자들과 폭탄주를 마신 뒤 만취상태에서 김모여기자를 뒤에서 ‘잘못’ 잡아 ‘성희롱’ 논란을 빚었다. 박검사는 곧바로 전주지검으로 좌천됐다.

지난해 백모검사는 기자들과 폭탄주를 마신 뒤 ‘유력 일간지 간부의 비리혐의에 대해 수사중’이라는 근거없는 이야기를 해 한동안 파문을 일으켰다. 문제의 발언으로 백검사도 그 후 인사조치됐다.

대검은 박검사 사건 이후 근무시간중 폭탄주 금지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 지시 후 한달 만에 진검사장 발언으로 다시 메가톤급 폭탄주 사고가 발생했다.

‘검찰 폭탄주’의 원조는 한나라당 박희태(朴熺太·전법무장관)의원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80년대 초 그가 춘천지검장 시절 군부대 간부들과 교류를 하면서 군의 폭탄주 문화를 들여왔다는 것. 이후 폭탄주는 검찰을 상징하는 전통이 됐다. ‘검사 동일체의 원칙’이 말해주듯 어느 집단보다 상명하복과 연대의식이 강한 검찰의 특성과 폭탄주의 특성이 잘 맞아떨어진 탓이다.

검사들의 술자리에서 폭탄주는 상관에 대한 절대복종과 기강확립의 의미를 지닌다. 상관이 폭탄주를 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거절할 수 없다. 또 순서도 대체로 서열대로 돌아간다.

검찰에서 폭탄주가 성행하는 또 다른 이유는 ‘속전속결(速戰速決)’의 효과 때문이다. 일이 바쁜 탓에 빨리 마시고 빨리 취하자는 것.

그러나 최근에는 폭탄주 문화에 대한 자성(自省)의 소리도 높다. 최근 타계한 서익원(徐翼源)전수원지검장은 타계직전 펴낸 회고록 ‘따뜻한 날의 오후’에서 “폭탄주 문화는 남의 괴로움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공직자가 근무시간중 폭탄주를 마시는 것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용납될 수 없다”며 “이번 기회에 군사문화의 잔재인 폭탄주를 영원히 추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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