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통령 『비자금수사 안해 김태정씨 장관 임명』

  • 입력 1999년 6월 11일 00시 47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0일 오후 신임 검찰간부들을 접견한데 이어 저녁에는 청와대에서 국민회의 소속의원 및 당무위원들과 만찬을 함께 하면서 ‘고급옷 로비의혹사건’과 ‘조폐공사 파업유도 의혹사건’ 등과 관련한 자신의 심경을 1시간10분에 걸쳐 털어놨다.

○…김대통령은 만찬에서 우선 김태정(金泰政)전법무장관을 임명한 이유에 대해 “대선 때 여당인 한나라당이 이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법률가의 양심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칠 비자금 관련 수사를 선거 후로 미뤘다”면서 “바른 법조인의 자세를 갖고 있다고 분명히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또 ‘옷사건’ 때 김전장관을 해임하지 않은 배경에 대해 “죄가 없는데도 책임을 물으면 대통령에게 충성을 안하고 다른 곳의 눈치를 볼 것이 아니냐”며 “‘죄가 없으면 처벌하지 않는다’고 내가 말했으니 내가 책임질 생각으로 유임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대통령은 “노동자가 피눈물을 흘리고 정부가 애를 쓰고 있는데 마치 (파업유도)공작을 한 것처럼 말한 것은 중대한 문제로 이런 일에 장관이 책임을 안지고 누가 지겠는가”라고 김전장관을 해임한 이유를 밝혔다.

○…국회 국정조사 수용에 대해 김대통령은 “진형구(秦炯九)전대검공안부장의 말은 사실이라면 큰일이고 실언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로 너무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대통령은 그러면서 “나는 대통령으로서 양심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했다”며 “하루를 하더라도 바르게 하려고 대통령이 됐으며 절대 권력을 사적(私的) 동기에 이용할 생각이 없다”고 덧붙였다.

김대통령의 얘기는 언론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졌다.

“국제여론에서도 지금까지 ‘DJ리더십’이 참 잘해왔으나 도전이 크다고 했다. 장관부인들이 고급의상실에 다니고 한 것은 잘못이지만 매 한대 때릴 잘못도 있고 감옥에 갈 잘못도 있다. 그렇게 정치를 흔들어버리면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가. 언론도 이번에 한 일에 대해 한번 검토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대통령은 마지막으로 참석자들에게 “내가 잘해야 여러분도 자랑할 수 있게 될테니 꼭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한 뒤 외환위기극복 등의 치적을 열거하면서 “자랑거리도 많으니 내 심정이 돼서 국민을 설득해달라”고 당부했다. 이 대목에서 참석자들의 박수가 터져나왔다.

당초 이날 만찬에서는 위기수습을 위한 당측의 건의가 있을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됐으나 김대통령의 말이 워낙 심각했기 때문인지 김영배(金令培)총재대행의 인사말과 이만섭(李萬燮)고문의 건배제의 이외에는 발언이 일절 없었다.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검찰 간부들에게 전례없이 매서운 ‘채찍’을 들었다. 그러면서 김대통령은 “참으로 기막힌 일”이라는 깊은 탄식을 숨기지 않았다.

이 때문에 김대통령의 질책이 이어지는 15분 동안 접견장은 시종 납덩이처럼 무거운 분위기였다고 박준영(朴晙瑩)대통령공보수석비서관이 전했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한편으로 검찰을 달랬다. 김대통령은 “대통령도, 여러분의 자리도 잠시다. 그러나 검찰은 영원하다. 한두 명의 실수로 검찰이 욕을 먹으면 안된다”고 당부했다.

이에 김정길(金正吉)법무장관은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사죄한 뒤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몸과 마음가짐을 새롭게 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최영묵기자〉m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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