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침묵의 연평도]발묶인 어선 애타는 漁心

  • 입력 1999년 6월 13일 19시 53분


“북한어선은 우리 영해까지 내려와 조업하고 북한측은 자기들 어선을 보호한다며 경비정도 내려보내는데 우리 정부는 왜 어민들의 어장을 다 막아버리는지 모르겠습니다.”

북한경비정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하기 시작한 지 일주일째가 되는 13일. ‘꽃게잡이의 섬’으로 불리는 서해안의 인천 옹진군 연평도는 ‘침묵의 섬’으로 변해 있었다.

부두에 을씨년스럽게 정박해 있는 수십척의 어선, 활기를 잃은 길거리의 상점들 그리고 깊은 시름에 잠겨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어민들….

1000여명이 살고 있는 이 섬에서 꽃게잡이는 주민들의 ‘생명줄’과도 같은 소득원. 6월 한달동안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꽃게잡이는 사실상 1년 소득 전부라는 것이 이곳 어민들의 말이다.

하지만 활기를 띠며 꽃게를 실어 담아야 할 어선들은 대부분 출어를 포기한 상태. 북한 경비정의 침범으로 꽃게를 잡을 수 있는 어장이 절반 이하로 줄어버렸기 때문이다.

54척의 어선 중 13일에 출어한 어선은 불과 9척. 가까운 바다로 출어했던 이들은 그나마 오전 11시 이전에 모두 돌아왔다. 황금어장을 쳐다보고만 있어야 하는 어민들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어민 안광헌씨(40)는 “나가봤자 꽃게 잡을 어장이 없다”며 “금년에는 어획량이 좋아 작년에 비해 최소한 3배 이상 잡을 수 있고 가격도 50% 이상 높게 형성돼 꿈에 부풀어 있었는데 날벼락을 맞은 느낌”이라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민들은 “북한경비정과 대치중인 작전구역에서 가까운 어장에 꽃게가 대거 몰리고 있고 바로 그 지점에 연평도 전체 어망의 70% 가량이 설치돼 있다”며 “조업구역을 전면 개방하지 않을 경우 출항하더라도 기름값 등 출어 경비조차 건질 수 없는 실정”이라며 하소연하고 있다.

7일 이후 한번밖에 출어를 못했다는 선원 문운식씨(29)도 “작년에 비해 수입이 절반으로 줄었다”며 “이 상태로 1주일만 더 가면 연평도는 ‘죽음의 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평도지역 선주와 선장 50여명은 12일 연평도 송림면사무소 복지회관에서 긴급 대책회의를 열어 군당국이 조업구역 제한조치를 조속히 철회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또 조업금지기간만큼의 조업시기 연장 등을 촉구했다.

어민들의 수입이 줄자 상점과 음식점 등도 큰 타격을 받았다.

특히 이곳의 군부대가 비상체제로 돌입하면서 면회객의 발걸음도 뚝 끊겨 상인들의 손해가 더욱 심해졌다.

식품점을 운영하는 변재순씨(61)는 “하루 10만여원어치 팔리던 것이 7일 이후 5만원어치도 안팔린다”고 말했다.

어획량이 줄어들자 연평도 어민들로부터 꽃게를 매입, 인천지역으로 실어나르는 꽃게운반선 3척도 연평도 운항을 이틀간 중단하고 있다.

〈인천·연평도〓이완배·박희제기자〉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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