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이 청와대와 검찰 일각 등의 끈질긴 반대에도 불구하고 특검제 수용의 결단을 내린 이유는 자명하다.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있는 정국상황을 추스를 수 있는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여권의 한 핵심관계자는 “특검제 수용을 지지하는 여론이 70%를 넘는 상황에서 여론을 거스를 명분이 없다”며 여론에 떼밀린 결과임을 인정했다.
이같은 배경과는 별개로 여권의 특검제 수용배경에는 몇가지 전략적 고려가 깔려 있다. 우선은 야당의 공세 차단이다. 여권 내에서는 ‘고급옷 로비의혹사건’과 ‘조폐공사 파업유도 발언’ 이후 날로 거세지는 야당의 예봉을 꺾고 정국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서도 상황을 공세적으로 돌파해야 한다는 ‘정면돌파론’이 점차 세를 얻어왔다.
여권 내에서는 벌써부터 “야당이 이같은 헌정사적 ‘결단’까지 수용하지 않고 정국파행을 계속 조장한다면 여론의 역풍(逆風)을 맞게 될 것”이라며 ‘역공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또 정부의 개혁작업에 힘을 싣기 위해 ‘권력의 시녀’란 비판을 받아온 검찰을 특별검사라는 ‘외부의 칼’을 빌려 수술하는 자세를 국민에게 보일 필요가 있다는 판단도 이번 결정의 배경으로 작용한 듯하다. 여기에다 여권으로서는 내년 총선에 대비해 최근 ‘반(反)DJ 성향’까지 보이고 있는 시민단체와 야당간의 연계고리를 차단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지난주 후반 이미 ‘비상한 조치’의 필요성을 건의받고 나서도 최종 결심을 망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검찰조직 와해’에 대한 우려와 “야당 시절의 특검제주장은 실수였다”는 발언을 번복하는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었다는 것.
김대통령이 이미 수용쪽으로 마음을 굳혔으면서도 마지막까지 ‘당의 진언(進言)’을 수용하는 모양새를 갖추려 한 것도 결국 ‘자연스런 U턴’의 타이밍을 기다렸기 때문인 것 같다.
〈이동관기자〉dk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