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회의의 한 관계자는 22일 “대한생명이 구입한 그림이 단 한점이라도 제삼자에게 건네진 사실이 드러났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현상황에서는 ‘로비 의혹’이라는 말 자체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국민회의는 이날 김영배(金令培)총재권한대행 주재로 고위당직자회의를 열어 검찰에 대해서는 철저한 수사를 통해 시비를 가려줄 것을 촉구하는 한편 한나라당에 대해서는 근거없는 내용으로 의혹을 부풀리는 무책임한 정치공세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이영일(李榮一)대변인은 “이번 사건은 검찰이 다뤄도 충분한 경제사범이자 형사사범”이라며 “그런 문제마저 정치문제로 물고 늘어지는 한나라당의 태도는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같은 공식 입장과 달리 여권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이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지 않는’ 결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특히 사건 첫날인 21일 “의혹의 진상은 규명돼야 한다”는 공식 논평만 내고 침묵하고 있는 자민련에선 “그림을 산 측과 판 측의 주장에 차이가 있는 등 이번 사건의 이면에는 아무래도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아무튼 이번 사건으로 인해 ‘고급옷 로비 의혹사건’ 이후 계속되고 있는 민심 이반현상이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 때문에 여권은 고민하는 모습이다.
야당은 22일 ‘그림 로비의혹’은 ‘고급옷 로비의혹’과 같은 선상에 있는 ‘일란성(一卵性) 쌍둥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실시와 특별검사제 도입을 거듭 촉구했다.
한나라당은 이날 주요당직자와 특보단 회의를 잇따라 열어 대책을 논의한 데 이어 ‘옷사건 진상조사특위’(위원장 이우재·李佑宰) 위원들을 대한생명에 보내 운보 김기창(雲甫 金基昶)화백 그림 구입내용과 현재 보관 중인 작품수 확인을 요청하는 등 당 차원의 자체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한나라당은 특히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검찰이 그림 로비의혹에 대해 수사에 착수한 것은 국정조사와 특검제를 회피하기 위한 ‘면죄부 발부용 요식절차’에 불과하다고 반발했다.
신경식(辛卿植)사무총장은 “대다수 국민이 검찰의 ‘옷사건’ 수사결과를 믿지 않는데 검찰이 그림의혹을 수사한다고 해도 그 결과를 믿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고 “그림 로비의혹에 대해 수사할 계획이 없다고 말하던 검찰이 대통령의 지시로 하루아침에 태도를 바꿔 수사에 착수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안택수(安澤秀)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옷사건 수사 당시 그림 구매사실을 알고도 이를 의도적으로 덮은 의혹이 짙다”면서 “검찰의 그림 로비의혹 수사는 도마뱀 꼬리 자르기식의 뻔한 수사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불신을 받는 검찰이 최순영(崔淳永)신동아회장의 그림 구입시기, 구입목적, 그림행방, 석연찮은 내사종결 이유 등을 수사하기 보다는 국정조사를 먼저 실시한 뒤 미진한 부분은 특검제를 통해 의혹의 실체를 밝혀야 한다는 게 한나라당의 주장이다.
〈김차수·윤승모기자〉kimc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