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자치부는 현재 진행중인 주민등록증 교체작업을 늦출 수 없어 성과 이름을 처음 계획대로 한글로만 표기하고 내년 3월이후 새로 발급되는 주민등록증부터는 한자 이름을 병기할 것이라고 한다.
행정자치부는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의 지시에 따라 주민등록증 이름의 한자병기 준비를 위해 소프트웨어 보완 작업에 들어갔다.
당초안대로 한글로만 쓰면 경비도 절감되고 주민등록증 발급 처리도 순조로울텐데 총리 지시 때문에 평지풍파가 일고 있는 것이다. 주민등록증에 한자 이름을 꼭 써야 할까. 한글로만 적으면 성씨 혼란이 일어난다는 주장이지만 설득력이 전혀 없다. 도대체 무슨 혼란이 일어난다는 말인가. 예를 들어 ‘강’씨는 한자 ‘姜’‘康’‘江’ 중에서 어느 성씨인지 알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김’씨는 본관이 김해 안동 경주 광산 고령 진주 등 여러 갈래가 있음에도 한자로는 ‘金’으로만 적을 수밖에 없다. 이(李)씨나 박(朴)씨 등도 마찬가지다. 이것을 한자로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한자 표기가 없어서 ‘성씨 혼란’이 생긴 일이 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동명이인의 문제로 혼란이 오고 위조 범죄가 늘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한자로 표기해도 동명이인이 있게 마련인데 한글로 표기된 동명이인만 왜 문제를 삼는가.
현재 각종 신분증 예금통장 신용카드 등은 한결같이 한글로만 적혀 있지만 사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새 주민등록증의 견본을 보니 전산 처리가 완벽해 위조할 수 없게 돼 있다. 사진을 떼붙이거나 주민등록번호 생년월일 주소 등을 고칠 수가 없다.
효용성이 없는 한자 표기를 강행하는 것은 시대 흐름을 무시한 퇴행적 발상이다. 엄청난 경비와 행정력이 낭비되는 만큼 현행대로 한글로만 발행하는 것이 옳다. 전체 여론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일부 나이많은 세대의 독단적 결정으로 한자 병기를 추진해 행정을 갈팡질팡하게 해서는 안된다.
김계곤(한글학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