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이슈/주민증 이름 한자병기]동명이인 혼란 방지

  • 입력 1999년 6월 24일 19시 24분


《새로 발급되는 주민등록증에 한자 이름을 병기하는 문제를 놓고 논쟁이 뜨겁다. 정부는 “동명이인을 구별하기 어렵고 이름의 고유성을 존중해 한자를 써야 한다”는 주장을 수용해 내년 3월부터 갱신할때는 한자를 병기할 방침이다. 한글학회 등은 “한자를 안써도 전혀 불편이 없고 동명이인은 주민등록번호로 구분이 가능하다”며 반대하고 있다.》

행정자치부가 새 주민등록증의 이름을 내년부터 한글과 한자로 병기하기로 한 것은 뒤늦은 감이 있지만 잘한 결정이라고 본다. 정부는 준비기간 때문에 우선 한글 이름으로 된 주민증을 발급하고 내년 3월부터 주민증을 경신할 때 한자를 병기할 방침이다.

한국인의 이름은 씨족문화의 핵인 성씨와 항렬자에 한 글자를 더해 세 글자로 작명하는 것이 보통이다. 1000여년을 내려온 전통문화이다.

주민증의 이름을 한글로만 쓰다보면 강(姜, 康) 유(柳, 劉, 兪, 庾)씨 등 동음이성(同音異姓)을 구별할 수 없다. 심하게 말하자면 성씨의 고유성을 허무는 ‘제2의 창씨개명’이다. 동명이인(同名異人)으로 겪을 국민의 혼란과 이로 인한 문화적 영향도 심각하다.

주민등록번호가 있기 때문에 동명이인이 많아도 지장이 없다는 주장은 이름이 갖는 중요성을 간과한 것이다. 우리는 이름자를 명예나 인격과 동일시하고 있다.

헌법에도 전통문화 계승 발전 및 민족문화의 창달을 국가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호적법에 따르면 호적에 신고된 성명은 법원의 판결 없이는 개명하지 못한다. 호적법 시행규칙은 성명과 본(本)은 한자 표기가 불가능하지 않는 한 반드시 한자로 쓰고 한글을병기하도록하고있다.

주민등록법 시행령에도 주민증의 성명은 호적에 기재된 문자로 표기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어려운 벽자(僻字)는 전산화 문제 때문에 한글로 쓸 수 있게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 지금 이름은 대법원 규칙이 정한 2854자 범위에서만 짓도록 해 전산화에 걸림돌이 될 소지도 줄었다. 예외 때문에 성명 표기의 대원칙을 바꿀 필요는 없다.

성명 표기는 호적에 기재한 성명이 한자이면 한자로 표기하고 괄호 안에 한글을 병기하면 된다. 일단 한글 전용으로 했다가 경신할 때 한자를 병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새 주민증 발급을 조금 늦추더라도 충분한 준비를 거쳐 한자 이름이 병기된 제대로 된 주민등록증을 발행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서두를 일이 아니다.

박천서(한국어문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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