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는 국가보안법의 애매한 조항들을 폭넓게 해석함으로써 이 법 위반으로 기소된 피고인들은 대부분 유죄판결을 받았다.
70년대 시국공안사건 변론을 많이 한 한승헌(韓勝憲·변호사)감사원장은 “재일교포 유학생이 ‘서울대 앞에는 분식집이 많이 있다’고 일본에서 말한 것에 대해 법원이 ‘남한의 어려운 식량사정을 알려줘 반국가행위를 했다’는 검찰 공소사실을 인정해 반공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내린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원의 판례는 90년 4월 헌법재판소의 찬양고무죄 한정합헌 결정에 따라 91년 5월 국가보안법 1조2항이 신설되면서 보다 엄격하게 해석하는 방향으로 많이 바뀌었다. 이 조항은 ‘(국가보안법을) 확대해석하거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했다.
대표적인 것이 ‘꽃파는 처녀’ 판결. 서울고법 형사4부는 지난해 4월 독일 유학 시절 북한영화 ‘꽃파는 처녀’ 등 10편의 북한영화를 빌려본 혐의(이적표현물 소지)로 기소된 박모씨에게 부분 무죄판결을 내렸다.
‘꽃파는 처녀’가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적표현물의 대명사였던 점을 고려하면 이 판결은 획기적인 것이었다. 당시 인권단체들은 이 판결이 ‘고무줄 국보법 조항’을 엄격하게 해석한 판례라며 환영했다.
또 서울지법 형사합의23부는 4월 22일 한총련 대표로 밀입북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황모피고인에 대한 공판에서 종래 잠입 탈출죄를 포괄적으로 인정하던 기존 판례를 뒤집고 국가보안법상 잠입 탈출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법원의 판례가 국보법을 엄격히 해석하는 쪽으로 완전히 정착한 것은 아니다. 대법원이나 대다수 하급심 판결은 여전히 과거의 ‘엄벌주의’에 더 가깝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대법원은 ‘북한이 남한과 유엔에 동시 가입하고 남북교류가 이뤄진다고 해서 북한을 반국가단체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며 일관되게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판단하고 있다.
〈하태원기자〉scooo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