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사정설을 공식적으로 제기하는 쪽은 한나라당. 한나라당은 임지사의 부인 주혜란(朱惠蘭)씨에 대한 조사에서 출발한 이번 일이 독립된 사안이 아니라 여권의 향후 정국구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세풍(稅風)’수사 재개 및 임지사 조사를 신호탄으로 정치권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을 벌인 뒤 이를 토대로 내각제 개헌 유보와 정계개편을 추진하려는 ‘거대한 음모’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권은 이같은 주장을 일축한다. 청와대와 검찰은 “주씨의 혐의는 경기은행 퇴출과정의 비리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단서를 잡은 것일 뿐 어떠한 정치적 의도도 없다”고 반박한다. 여권 관계자들은 또 “임지사에 대한 조사는 현 정부의 강력한 부정부패 척결의지에 따른 것”이라고 강조한다.
사실 임지사 부부에 대한 조사는 여러 갈래의 해석이 가능하다. 우선 여권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상당한 도덕적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게 됐다. 경우에 따라 내년 총선에도 악영향을 미칠 ‘대형 악재’라고 할 수 있다.
또 불과 며칠전까지 공직자부패에 대해 “윗물은 맑아졌다”고 강조했던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입장도 곤혹스러워졌다. 임지사가 김대통령이 각별하게 신임하는 측근 인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런 맥락에서 여권관계자들은 “이번 일로 여권이 치명상을 입게 됐는데 의도적으로 일을 꾸몄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항변한다. 여권은 이와 함께 임지사에 대한 검찰수사를 세풍수사 재개 이후 야당이 집중공격한 검찰의 중립성을 반증하는 증거로 내세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임지사에 대한 ‘읍참마속(泣斬馬謖)’을 토대로 대대적인 부정부패 척결과 사정작업을 벌일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15일 “여든 야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부정부패에 대해서는 엄중히 처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혀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
여권내에서는 검찰의 ‘자가발전(自家發電)’에 의한 대대적 사정가능성도 제기된다. 특검제 도입으로 위신이 땅에 떨어진 검찰이 권력핵심부의 의중과는 무관하게 명예회복의 차원에서 정치권 등 각 분야에 대해 사정의 칼을 휘두를 것이라는 예상이다.
또 일부에서는 이번 사건이 내각제 담판과 함수관계가 있는 것으로도 본다. 즉 임지사사건이 지방은행 퇴출과정에 대한 수사에서 불거져 나왔다는 점에서 퇴출된 충청은행의 회생을 위한 로비를 활발하게 벌인 자민련 충청권의원들도 겨냥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들 대부분이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의 내각제 연내개헌 포기결심에 가장 크게 반발하는 세력이기 때문이다.
〈최영묵기자〉mook@donga.com